[시사이슈 찬반토론] 공공분양, 청약 점수 높은 4050보다 2030청년 우선해야 하나

입력 2022-11-07 10:00   수정 2022-11-07 16:22


윤석열 정부가 공공주택 50만 호 건설 계획을 내놓으면서 청년층에 우선 분양할 물량을 34만 호로 배정했다. 임대와 저가 분양을 주축으로 하는 공공 분양 아파트 공급 계획은 역대 정부에서도 늘 있었다. 이번 정부가 5년간에 걸쳐 내놓겠다는 공공주택 정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물량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청년주택’을 34만 호 공급한다는 대목 때문이다. 2030세대에 주거 복지를 제공해 결혼을 유도하면서 저출산 문제도 해결해나간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갈수록 가중되는 주거난을 감안한 것이다. 문제는 공공 분양을 기다리며 무주택으로 ‘가점’을 쌓아온 4050세대의 반발이다. 무주택자 설움과 온갖 고충을 무릅쓰고 버텨왔는데, 왜 청년에게 공공 물량을 몰아주느냐는 것이다. 한정된 재원의 공공주택, 청년세대 우선 공급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 5년간 50만호 중 34만호 청년에…주거안정, 비혼·저출산 해법
한국 사회에서 2030 청년세대의 애로와 어려움은 한마디로 설명도 못할 지경이다. 고충의 갈래도 다양하고 복합적인 데다 조기에 해결될 기미도 안 보인다. 가장 심각한 것은 좋은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이다. 성장잠재력이 매년 뚝뚝 떨어지고 투자가 감소하면서 고용 시장 전반이 위축되는 가운데 청년백수 문제점도 심각하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장기 저성장 시대의 부작용, 충격파를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의 청년세대가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고공행진은 청년 취업난만이 아니다. 높은 비혼율에다 0.8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이 청년세대 어려움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이 어렵기 때문에 혼인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고등 생명체’의 자기본능에 따른 일종의 ‘집단지성’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율은 단지 가임기의 젊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래 남성들도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이다. 5060세대는 고성장기의 혜택과 과실을 제대로 누렸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전에 대도시 중심 등지에 다수가 자기 집을 가졌고, 직장에서도 장기 근무로 일정 수준의 부를 확보했다. 세대 전체가 매년 두 자리씩의 경제성장률까지 구가했던 고성장기의 성과를 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아들과 조카 세대를 보라. 현실이 어떤가.

주거난은 2030세대의 그런 어려움 가운데 가장 실감나는 사회 진입 장벽이다. 집 문제를 해결해줘야 청년 삶이 안정되고 독립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제대로 된 발걸음을 뗄 수 있다. 정부가 이를 도와야 한다. 이 세대를 홀로 서는 성인으로 자립시켜야 이들이 세금을 비롯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같은 공적부조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는 데 현실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그러니 청년세대에 주택 공급은 한정된 재원에서 상당히 생산적인 투자, 미래지향적 투자가 된다. 이들이 3040세대로 나이가 들면 공공주택을 새로운 2030에 넘겨주는 방식의 운영도 좋다.
[반대] 4050 세대 "나이가 죄인가"…정책 믿고 20년 가점 모으다 바보 될 판
2030 청년세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매우 중요한 정책 목표다. 꼭 실현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기업 기 살리기와 투자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로 예산을 부어넣는 것도 그래서 필요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는 관제 고용보다 기업과 시장, 즉 민간에서 나오는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실직자를 위해 고용보험의 벽을 두껍게 하고,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함께 필요하다. 정부가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학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등 청년층의 사회 진출이 수월해지도록 여러 지원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주택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 예산은 제한돼 있고, 정부 공기업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인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가 내놓는 좋은 주택도 늘 부족하다. 이런 주택 공기업 등이 내놓는 물량을 바라며 ‘가점’을 차곡차곡 채워온 중견·기성세대가 적지 않다. 청약저축에 미리 들어 준비 기간을 늘려오고, 아이를 낳아 자녀 점수를 쌓으며, 무주택 기간을 길게 가져온 것이다. 어떤 가구는 가족 수에 따른 가점을 확대하기 위해 부모를 모시고 살기도 한다. 이들에게 돌아갈 물량을 청년에게 대거 돌린다면 그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이가 무슨 죄인가. 오랜 기간 동안 점수를 쌓아온 4050세대를 어느 날 공공공급 물량에서 대거 배제하는 것은 ‘정책의 배신’이다. 신설되는 청년 특별공급 안을 보면 ‘공공분양 일반공급’과 함께 ‘민간분양의 중소형 평형’에도 추첨제로 2030세대에 문을 크게 열어준다. 이렇게 되면 청약점수가 낮은 청년의 당첨 가능성만 높아진다. 미혼·비혼 청년까지 공급 우대를 하면 1인 가구에 대한 혜택이 돼버린다. 이런 역차별이 저출산 해법에 도움이 될 수 있나.
√ 생각하기 - 따로 보면 이유 있는 정책의 충돌…'표계산 정치' 배제, 행정전문가에 맡겨야
가용 재원은 한정돼 있는 데 쓸 곳은 많아진다. 이래서 정책이 어렵다. 동시에 이런 문제를 신중하고 균형감 있게 풀어가는 게 행정의 묘미, 보람이기도 하다. 미래세대에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자는 것 자체에는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40~50대의 장기 무주택자 우대 물량이 확 줄어든다고 하면 걱정할 것이다. 결국은 재정 효율의 극대화, 균형, 우선순위, 사회구성원 최대 만족 추구 같은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자면 정책입안자에게 부당한 압력과 개입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표퓰리즘 기반에서 표나 추구하는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압력이다. 차분한 공론화도 이래서 중요하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충돌이 세대 전쟁으로 비화돼서도 안 된다. 청년의 사회 진출도 돕고, 정책만 보고 인내해온 기성세대의 기득권도 존중하는 묘안은 없을까.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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