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4억 전셋집 계약 끝났는데"…세입자 직장인 '발만 동동' [이송렬의 우주인]

입력 2022-11-05 07:28   수정 2022-11-07 08:29


#. 선씨(43)는 2년 전 직장을 옮기면서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 30평대(전용 84㎡) 아파트 전셋집을 4억원에 얻었다. 하지만 최근 회사가 사옥을 이전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문제는 집주인이 "세입자가 구해지면 돈을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 계약갱신청구권, 상생 임대인제도 등으로 세입자들이 움직이질 않아 전세 수요가 없는 데다 전셋값은 선씨가 집을 구했을 당시보다 8000만원 내린 3억2000만원 수준이라 불안함은 더 커졌다.

선씨는 "이사를 가야 하는데 보증금이 묶여 있으니 오도가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가운데 임대차 시장 분위기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부동산 급등기 전셋집을 찾지 못해 세입자들이 어려워하던 상황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찾지 못하는 '역(逆)전세난'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계약기간이 끝나 이사를 하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46·사진)는 최근 <한경닷컴>과 만나 "우리나라 전세 제도에는 일종의 '관행'이라는 게 너무 많다"며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전세금 안 주는 집주인, 소송만이 답일까
행정절차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집주인과의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복잡한 소송으로 가기 전 '공증'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공증은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를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구두를 통해 합의했지만 이런 사실 자체를 문서의 형태로 남기고, 더 나아가 추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땐 경매 등을 통해 집을 처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끔 도울 수 있다.

공증보다 한 단계 위의 절차로는 조정제도가 있다. 조정제도는 분쟁 당사자인 집주인과 세입자로부터 각자의 주장을 듣고 관련 자료를 검토한 후 여러 사정을 참작해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 합의를 할 수 있도록 주선·권고를 하는 법적 절차다. 소송보다는 비용과 시간 등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제도다.

엄정숙 변호사는 "공증할 때는 '언제까지 전세보증금을 지급하겠다'와 같은 구체적인 기간이 들어가야 하고 '돈이 지급되지 않으면 강제집행까지 허락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며 "'단순히 둘의 약속을 지키겠다'에서 그치지 않고 해결책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정제도는 법원이 직접 당사자들을 중재하는 것"이라며 "공증제도를 통해 조정이 되면 서로 확정적인 합의를 했다는 의미기 때문에 추후에 다툴 수가 없는데, 조정제도는 법원이 직접 나서 해결까지 한다는 점에서 법이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공증, 조정제도를 통해서도 해결이 안 되면 최후의 수단인 소송으로 넘어갈 수 밖엔 없다.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 즉 '전세금 반환소송'이다. 세입자는 그간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을 통지한 문서 등을 토대로 법원에 소송을 청구한다. 소장을 접수한 이후 1~2회 변론기일이 열린 후 선고가 진행되거나, 상대방(집주인)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경우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정하는 취지의 무변론 판결 선고가 진행된다. 판결이 선고되면 강제집행이 가능해진다.

엄 변호사는 "공증 제도나 조정제도를 활용했음에도 집주인과 원만한 합의를 보지 못한 세입자는 결국 소송을 택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소송을 선택했다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적게는 6개월에서 많게는 1년 6개월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고, 변호사 등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비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송으로 전세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도 등기부등본에 있는 압류, 근저당권, 국세 체납 등 선순위에 따라 전세보증금 전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럴 경우엔 전세금 반환소송과 별도로 '추심'이라는 제도를 통해 집주인의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추심까지 간다면 정말 '장기전'으로 보고 진행해야 한다"고 짚었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행정적인 절차는 아무래도 시간과 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따라오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아무리 작은 행정절차여도 세입자가 직접 손품, 발품을 팔아야 하고 소송은 경우에 따라 수년이 소요될 수 있어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분쟁 자체를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에 큰 비중을 차지해 '깡통 전세'가 될 것 같은 집, 등기부 등본이 복잡하지 않은 집 등을 피해서 집을 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엄 변호사는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서 해당 집에 선순위 채무가 무엇이 있는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보증금이 안전권에 있는지 등을 살피면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계약을 맺을 때도 계약 당사자와 직접 대면을 하는 게 가장 좋고, 대리인이 나온다면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위임장을 제대로 챙겨왔는지 등 세입자가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집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엄 변호사는 "전세금 반환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대체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빼주지 않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세입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만기 때 보증금을 주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법을 어겼다는 것인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집주인들의 이런 잘못된 생각이 하루빨리 바뀌어서 세입자들이 마음 편히 집을 구하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엄정숙 변호사는 2000년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해 2007~2010년 사법연수원에 있었다. 2011년 서울특별시 중구정보공개심의회 심의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서민지원대책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2011년 6월~2013년 6월 법무법인 한반도에 변호사로 있다가 2013년 법도종합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2020년부터는 법도종합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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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사진·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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