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로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외부 일정을 자제하고 소비활동도 줄어드는 등 곳곳에서 침울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상자 가족과 주변인뿐 아니라 TV, 인터넷을 통해 사고를 지켜본 국민들도 극도의 긴장과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이은 국가적 재앙에 뉴스에서 눈길을 뗄 수 없고,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우울과 좌절감이 들고 가슴이 짓눌린 것처럼 갑갑하며 소화도 안 된다. 의료계는 “국민 상당수가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우리 뇌에서 생물학적인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뇌의 세 가지 영역인 편도체와 해마, 전두엽 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영역은 모두 스트레스 관리와 관련돼 있다. 그래서 정상 작동하지 못하면 뇌가 과잉 경계 상태를 유지하고 감정 및 충동을 억제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구별하면서 동시에 기억을 저장하고 검색하는 역할을 하는 해마는 실제 사건과 기억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고,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들을 위협 그 자체로 인식한다. 전두엽 앞부분인 전전두엽 피질은 외부 자극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뇌의 통제력을 관장하지만,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이 기능이 억제돼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충격적인 사건이나 갑작스러운 사고 등을 경험한 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정 기간에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불면증과 몸 떨림, 피로, 식욕 저하, 소화 불량 같은 증상이 대표적이다. 불안과 공포, 과민함, 악몽 등 심리적 변화도 생길 수 있다. 뇌에 있는 공포 및 기억의 회로가 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백명재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아 생긴 트라우마 증상은 실제 몸으로 오는 경우가 더 많다”며 “소화불량과 근육통, 피로감 등 신체 반응 및 변화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뇌는 새로운 경험과 작은 변화를 반복하며 회복하게 된다”며 “수면과 식사, 운동 등의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효과적인 대증요법 중 하나가 운동이다. 신체적인 자극은 뇌를 활성화하고 우울감을 낮춰준다. 밖에 나가 30분만 걷더라도 긴장과 우울감, 부정적 생각이 많이 줄어든다. 영국정신건강재단(MHF)에 따르면 영국 의사들 중 22%가 우울증 치료법으로 약물 대신 운동을 처방한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가 살면서 트라우마를 겪을 확률은 80%가 넘는다”며 “주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정리하거나 글로 표현하면 감정적인 해소가 이뤄져 심리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의 심리 안정을 위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마음안심버스’를 확대 운영한다. 마음안심버스엔 정신건강 전문의와 전문요원이 탑승해 정신건강 및 스트레스를 측정한 뒤 상담해준다. 늦은 밤 심리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24시간 운영하는 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이용해도 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