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시공사가 결정 난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원 ‘한남2구역’은 국내 정비사업의 문제를 대부분 망라했다. 지키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약속이 난무했다. ‘일단 따고 보자’는 식으로 수주전에 올인하다 보니 “수주전이 정치판 선거전 같다”는 얘기마저 나왔다.
이날 대우건설은 410표를 얻어 한남2구역 시공사로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대우는 이제 미래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약속을 다 지키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고, 못 지키면 기업 신뢰에 치명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우건설은 역대급 이주비 대여를 약속했다. 담보인정비율(LTV)을 150%까지 보장해주고 감정평가액이 적은 조합원에게도 최소 이주비 10억원을 보장했다. 롯데건설도 140%를 약속했다. 업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는 이 시기에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려는지 걱정이다.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건설사는 거의 없다”고 했다.
대우는 심지어 ‘남산 고도제한’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울시가 남산 경관 보호를 위해 아파트 높이를 90m로 제한했는데 이를 118m까지 풀겠다고 했다. ‘118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이며 층수도 14층에서 최고 21층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남산 고도제한 완화는 건설사가 풀 수 없는 난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러 심의를 거쳐야 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난색을 보였다. 롯데건설도 지난해 동작구 흑석9구역에서 ‘28층 11개 동’을 공약했지만 25층을 고수한 서울시 반대로 무산돼 시공 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
양사의 비방전은 업계의 눈살을 찌푸릴 수준이었다. 지난 2일에는 부재자 투표 때 대우건설 측 아르바이트 직원이 투표장 PC에 접근한 의혹으로 투표가 중단되기도 했다. 롯데건설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대우를 고발했다. 대우건설도 이에 맞서 “인근 공인중개사에 현금을 살포한 혐의가 있다”며 맞섰다. 한남2구역 조합원인 A공인 관계자는 “이번 수주전은 양사의 장점보다 단점을 부각시키는 네거티브가 표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꼬집었다.
한 건설업체 대표는 “부재자투표나 서면동의서를 받는 절차가 아웃소싱(OS)요원들이 조합원들에게 접촉해 부정행위를 유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시공사 선정 총회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건설업계는 수십 년째 변화도 없고 노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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