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산업에 디지털 전환 바람이 불고 있다. 임상시험 분야 또한 정보기술(IT)과 만나면서 분산형 임상시험(Decentralized Clinical Trials·DCT) 시대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분산형 임상시험이란 임상시험 대상자(피험자)가 의료기관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요양원, 자택 등의 장소에서 디지털 비대면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임상시험이 DCT로 전환되면 비용 절감은 물론 임상시험 참여자의 모집 속도와 참여율이 현저히 높아진다. 임상시험 기간도 단축할 수 있어 제약 및 의료 업계의 관심이 높다. 임상시험의 주목적인 피험자의 의료 데이터 품질 개선 효과가 뛰어나 신뢰 높은 신약 개발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메디테크 인사이트에 따르면 DCT 시장은 지난해 88억달러에서 2026년 142억달러 규모로 매년 10% 이상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DCT는 감염병이나 희귀질환과 같은 피험자 모집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임상시험 업계의 선진화를 이끄는 핵심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임상시험에 응하는 피험자들은 임상시험의 새로운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올 7월 미국의학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DCT에 사용되는 원격 기술들이 임상시험 참여율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다룬 논문이 발표됐다. 이 논문은 미국의 암 환자 118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다. 우선, 피험자들은 원격 의료 경험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원격의료를 경험한 비율은 44%였고, 이 중 95%는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피험자가 DCT에 들이는 노력이 정기 방문 치료와 비슷하다면 응답자의 77%가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 최근 2년간 단일국가, 다국가 임상시험 모두에서 분산형 임상시험 비율이 각각 1.2%, 6.4%로 선진국 중에서도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다국가 분산형 임상시험은 중진국과의 비교에서도 앞서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임상시험 시장에서는 서울이 2021년 기준 세계 1위, 한국 전체로 봐도 다국가 임상시험 순위에서 10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임상시험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추고 있음에도 DCT 도입에는 매우 소극적인 상황인 셈이다.
그 이유는 규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한시적 허용을 제외하고는 원격의료 및 의약품 배송 자체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DCT 도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인의 대면이 불가피한 검사들이 있어 DCT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필자가 있는 제이앤피메디도 국내에서 최초로 DCT를 비롯한 디지털 임상시험의 모든 것을 다루는 올인원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글로벌 분산형 임상시험 공동협의체인 DTRA(Decentralized Trials & Research Alliance·분산형 임상시험 연구연합)에서 한국 기업 최초의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임상시험 문서 관리 솔루션 ‘메이븐 독스(Maven Docs)’ 등을 통해 국내 임상시험 시장 확대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임상시험 시장의 고도화는 신약 개발 시장에서 막강한 국가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민관 협력으로 국내 DCT 시장을 꽃피우고 이를 통해 선진 의료 시대를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민석 제이앤피메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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