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07일 15:3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이 투자 회사에 대한 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로 일원화하는 지침 개정을 강행하자 재계와 전문가들은 "과도한 수탁자책임 활동으로 기업경영이 간섭받을 뿐 아니라 국민연금법을 위반한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해 독립성을 보장하고, 주주권 행사는 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가 책임지고 결정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연금 지배구조와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선방안 정책세미나’에서 "대표소송 일원화 지침이 개정되면 수책위가 심의·검토 뿐 아니라 대표소송 결정 권한까지 막대한 권한을 갖게 된다"며 “전문성과 독립성이 결여된 수책위 위원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관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세미나는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 대한상공회의소 등 7개 경제단체가 공동 주관했다.
정 부회장은 “의사결정에 책임을 지지않는 외부인사로 구성된 수책위 위원이 소송 권한까지 갖게 되면 기금수익률을 고려하지 않은 의사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부 인사를 배제한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기금위를 개편하고 수책위는 자문기구로서의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주대표소송은 기업가치가 훼손 됐을 때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책임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이다.
전문가들도 수책위 권한을 확대하는 방식의 지배구조개편이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했다. 채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수책위는 국민의 연금자산을 대리해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이중의 대리인비용을 물게 되고 기금운용의 전문성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김지평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도 “대표소송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등 중요성을 고려할 때 기금운용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해 기업의 실적이 악화하면 해당 기업의 경영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담당자 역시 대표소송과 같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책위 결정에 따른 경영개입으로 발생된 손해에 대해 국민연금이든 대상기업이든 스스로 법적 분쟁의 위험을 회피하는 방안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외 경제 불확실성으로 수익률 악화에 직면한 기금운용본부가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과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선에서도 연금의 수익성 확보가 최우선돼야 한다"며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하여 정책 결정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한다"고 밝혔다.
손석호 경총 사회정책팀장은 “국민연금법상 기금위 안건을 사전 검토·심의하는 기구인 수책위가 기금위에 대한 자문을 넘어 대표소송 등 주주권 행사를 직접 결정하는 것은 명백한 행정조직 법정주의 위반"이라며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이 상위 법령에 규정된 각 기관의 책임과 권한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정부 스스로가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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