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해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인공지능(AI) 기반 버추얼 휴먼(가상 인간)의 등장은 이제 새롭지 않은 소식으로 산업계 깊숙이 자리했습니다. 늙지도, 죽지도, 지지치도 않는 '스타'의 탄생을 '반짝 등장'으로 취급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 인간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AI 스타트업 펄스나인의 박지은 대표가 한경 긱스(Geeks)에 가상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두 번째 글을 보내왔습니다. 24년의 역사를 톺아봤을 때, 고비용 제작 구조를 혁파한 지금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입니다.
존 레논 존경하던 '그'의 활동 중단
“비록 함께 할 순 없지만 너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세상으로부터 널 지킬 거야. 그저 마음으로 밖에는 사랑할 수 없다 하여도. 세상엔 없는 사랑 난 너에게.”(가상 인간 가수 '아담'의 노래 '세상엔 없는 사랑' 中)
한국 최초의 가상 인간 '아담'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8년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아담은 팬클럽까지 결성되고, 첫 음반이 20만장이 팔리는 등 '히트'를 기록했다. 대기업 CF에 출연하며 사람들 뇌리에 기억되기도 했다. 세기말의 사이버 가수가 국내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셈이다. 그는 사랑하는 인간 여성의 옆을 지키기 위해 사이버 세계 '에덴'을 떠나 현실 세계로 오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없는, 영원하고 가슴 시린 사랑을 노래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은 현실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로맨스 판타지로 여심을 크게 흔들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21세기인'이 바라본다면, 아담은 다소 어색한 그래픽에 그친다. 하지만 세기말 대중들에게 그의 등장은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집약된 신선하고 충격적 사건이었다. 아담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가며 CF를 찍고, 함께 활동할 여성 모델을 공개 모집하는 행사를 열기도 한 그 시절 인기 스타였다. 존 레논을 존경하며, 비 오는 날과 축구, 신촌의 라이브 카페를 즐긴다는 아담. 사람 못지않던 그는 2집 발매 후 어느 날 갑자기 활동을 전면 중단했는데, 군 입대설부터 바이러스 해킹설 등 세간에 루머가 분분할 정도였다.
60분짜리 정규 방송도 기획되며 국내 대중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인물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근래 들어 알려진 관계자 언급에 따르면, 활동 중단 사유는 다른 데 있었다. 5분가량의 등장 영상 제작에 2억원 정도가 드는 등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창작 생태계와 신기술들이 만나 새로운 콘텐츠의 시도가 '빅뱅'을 이루고 있다. 접근 가능한 비용으로 기술이 보급됨에 따라 바야흐로 가상 인간의 파라다이스가 도래했고, 기획적으로도 다양한 콘셉트를 가진 가상 인간 개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AI를 활용한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발달로 이벤트성 활동 프로젝트를 넘어 예능과 드라마, 생방송 뉴스까지 소화하고 있다.
24년 흐르자, 브라운관 뛰쳐나왔다
'오리지널리티'를 고민하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또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지식재산권(IP)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다. 활동이 하루가 다르게 넓어진 배경엔 기술 발전상이 있다.가상 인간 얼굴 생성 CG 기술은 실시간 적용까지도 가능하도록 경량화됐고, 표준화된 정규방송에도 다양한 사례로 적용된 이력이 쌓이고 있다. 구글 등 대기업들은 연내 홀로그램 시제품을 설치해 시범 서비스를 발표하는 등 디스플레이 기술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가상 인간이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활발히 가상세계와 실제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할 때가 머지않았다.
올해 영국의 런던, ‘맘마미아’ 노래로 유명한 가수 ‘아바(ABBA)’가 40년전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를 하고 홀로그램 콘서트를 통해 돌아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ABBA Voyage’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미래형 가상 라이브 쇼는 아바 멤버 4인방의 젊은 시절 모습을 버추얼휴먼으로 재현하고, 모션캡처 장비와 홀로그램 입체 영상 기술을 활용해 공연 현장이 전하는 생생함을 더해 눈길을 끌었다.
40년 전의 아바를 재현한 버추얼 휴먼들은 아바의 전설적인 히트송 20곡을 담은 90분간의 완벽하고 환상적인 공연을 런던에서 하루 두 번씩 2023년 5월까지 매일 선보일 계획이다. 디지털 홀로그램 기술로 컴백한 팝의 전설 아바는 이제 늙지도 죽지도 지지치도 않는 스타가 되었고 팬과 공연장만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것이다. ‘Voyage’라는 콘서트 이름처럼, 아직 아바를 꿈꾸는 팬들을 통해 이제부터가 그들이 진짜 전설이 되는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가상 인간을 통해 생겨나는 새로운 장르의 엔터테인먼트에는 혁신적인 크리에이터들이 창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가 있다. 첫 번째로 가상의 신세계 안에는 많은 가상 인물들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산업적 수요가 급팽창하여 크리에이터들에게 다양한 창의적 업무 기회를 준다. 이 기회는 인종, 성별, 국적, 사회경제적 배경 등 개인 특성 차이를 두고 보다 포용적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가상의 세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가상 인물을 통해 현실에서 추구하기 어려운 자아를 구현 함으로써 현실 자아의 존중감을 보다 밀접하게 찾을 수 있다. 자아 존중감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정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온전한 나의 발견'에서 나온다. 이러한 발견의 매체로서 버추얼 엔터테이너는 전에 없었던 색다른 기회를 보다 많은 크리에이터에게 제공하고 있다.
문화로 자리 잡을 가상 인간 엔터테인먼트
AI 기술 발전은 국내서도 변화를 선보이고 있다.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한 지 23년 후인 지난해, 예능부터 뉴스까지 방송 활동을 선보이는 가상 케이팝 걸그룹이 데뷔했다. 딥러닝 가상얼굴 생성 기술로 탄생한 걸그룹 ‘이터니티’다. 이들은 글로벌 다국적 팬덤 ‘이터널’과 함께 현재까지 4개의 디지털싱글을 발표했고, 영국 V&A 왕립박물관에 한류스타로 초대되어 전시되고 있는 신인 걸그룹이다. 가상 아티스트로서 지속적인 음악 활동으로 정규앨범 발매와 함께 콘서트도 개최할 예정이다.이터니티는 딥러닝 가상얼굴 생성 기술으로 만든 202명의 가상 소년소녀들 중 대중 투표를 통해 선발된 11명의 소녀들로 구성됐다. 콘텐츠 제작에서는 2차원(2D) 페이스스왑을 주요 기술로 실제 영상의 얼굴을 자동으로 분석, 가상의 얼굴을 알고리즘 기반 CG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프로세스에서 가상 인물의 얼굴이 진짜 사람처럼 표현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동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세밀하게 작업하는 것은 딥러닝 기술을 통해 구현한다. CG 수작업의 한계를 넘어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웃고 말하고 감정을 연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의 장점은 VFX 업계의 능숙한 버추얼 휴먼 아티스트든 초보자든 관계없이 딥러닝 자동화 합성 기술을 통해 학습비용을 낮춘다는 데 있다. 보다 다양한 버추얼 휴먼 크리에이터가 등장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춘 셈이다.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산업에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전략 수립은 이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됐다. 디지털 전환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우리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을 디지털화하는 방향성을 갖는데, 이것은 이제 단순 기술 도입 차원을 넘어 철학과 문화로 자리 잡는 추세다.
10년 전까지 팝 스타의 팬덤을 만드는 기반에는 방송과 라디오 활동, 현장 공연이 있었고 이것은 하나의 관문과도 같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팬덤은 게이머, 유튜버 등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고, 오늘날의 선도적인 팝 스타들은 온라인 방송 채널 등 디지털 세계에서 보다 활발히 활동하게 되었다. 전통 미디어는 조금씩 비중이 낮아지게 되었지만 메타버스 등 새로운 채널들은 활용도가 높아지는 추세이며, 가상 인간의 엔터테인먼트는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아우르는 솔루션을 가지게 되었다.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디스플레이 미디어는 개인과 공공의 각종 기기로 확산되고 있고, 디지털 리얼리티쇼가 갈 수 있는 곳은 이미 그 수를 세기가 어렵다. 이제 사이버 가수 아담이 꿈꾸던 신세계가 눈앞에 왔다.
박지은 펄스나인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전공
△CJ E&M 홍보마케팅 담당
△네이버 해피빈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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