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에 일상이 된 '투잡'

입력 2022-11-07 17:29   수정 2022-11-15 16:38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후 직원들의 ‘투잡’이 일상화하면서 과로로 인한 뇌출혈, 심근경색 사고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남 거제조선소 한 사내 협력사 대표는 주 52시간제로 연장근로가 막혀 임금이 줄면서 근로자들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며 이같이 한탄했다. 주 52시간제는 제조 현장의 풍경도 바꿨다. 우울한 쪽으로…. 울산, 거제, 목포 등 대형 조선소 인근엔 ‘배달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근로자도 상당하다. 한 중소 조선사 대표는 “직원들이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뛰고 출근하는 탓에 월요일 오전 사고 위험이 가장 높다”며 “직원들이 피곤해 보이면 휴게실에서 강제로 ‘토막잠’을 자게 한다”고 했다.

주 52시간제 시행 후 달라진 작업 환경을 취재하기 위해 자동차부품·기계·뿌리 업종 등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인터뷰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50대 A부장의 경우 야근과 잔업수당이 끊기면서 월 기본급이 300만원대에서 실수령액 기준 190만원으로 100만원 넘게 줄었다.

그는 “대학생 자녀 두 명을 키우고 있는데, 학비를 댈 수 없어 주말마다 양파농장, 마늘농장에서 작물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B과장은 “성수기 때는 월 150만원, 비수기 때는 100만원씩 월급이 줄었다”며 “음식 배달, 새벽 배송, 킥보드 수거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가족 모두 아르바이트를 뛰느라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20대 C사원은 “누구에게나 시간은 고귀한데, 국가가 왜 노동할 권리를 막나”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계에선 대기업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 단체가 소수의 목소리만 과하게 반영해 주 52시간제가 획일적으로 시행됐고, 대다수 근로자가 실질적인 피해를 봤다는 시각이 많다. 뿌리기업처럼 24시간 내내 공장을 가동해야 하거나, 조선·건설업처럼 기후나 수주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은 근로 일정을 예측하기 어려워 획일적인 주52시간제의 피해가 크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 조선업체 근로자 10명 중 7명은 임금이 줄었다. 월급은 제도 시행 전보다 60만원가량 낮아졌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1754만명이고 노조 조직률은 14%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조합원은 약 200만명이다. 일부 제조대기업 노조원들도 "상급 노조가 왜 획일적인 주52시간제를 왜 고집하는 지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타깝지만 상당수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초과 근로를 원하는 게 현실"이라며 "당초 주52시간제 취지는 근로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리자는 취지였지만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았고, 인력난으로 새로운 인력투입도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29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선진국은 우리나라보다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주 단위로 제한하고 있은 반면 미국은 연장근로 제한이 없고, 일본과 프랑스는 월 또는 연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예외 적용 폭도 넓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한국처럼 근로 시간 연장 한도가 경직돼 있고 징역형 등 위반 시 처벌이 강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부족인원은 59만8000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56.9%(21만7000명) 급증했다.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경영실적 회복 시기 전망에 대해 절반 가량이 내년 하반기나 내후년이후라고 답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위기를 헤쳐 나가기만도 벅찬 중소기업에 현실을 외면한 주 52시간제는 너무나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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