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캠퍼스의 한 회의실. 전 세계 20여 명의 구글 하드웨어 엔지니어와 서울대 연구진 사이에 열띤 온라인 토론이 펼쳐졌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마이크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의 문제점을 보완할 신기술을 논하는 자리였다.
애플, 구글, 메타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개념 설계’ 능력이다. 제조 분야에선 한국의 디스플레이 업체가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은 이들이 주도한다.
빅테크는 새로운 메타버스 디바이스를 ‘개념 설계’하고 여기에 필요한 디스플레이의 세부 성능을 정한다.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업체를 복수로 선정해 개발하는 방식이다. 한 구글 엔지니어는 “기존에 개발된 디스플레이 패널을 공급받는 단순한 소싱을 하지 않는다”며 “한 단계 발전된 제품 개발을 위해 업체에 다양한 주문을 한다”고 말했다. 공동 개발 과정에서 습득한 개발 노하우는 빅테크의 자산으로 내재화된다.
구글이 이날 서울대 연구진과 세미나를 연 것처럼 빅테크들은 최신 기술 트렌드를 섭렵하기 위한 자리를 자주 갖는다. 구글 엔지니어들이 향후 제품의 외관과 성능을 설계할 때 이런 최신 기술을 활용한다. 이런 개념 설계 능력은 새로운 디바이스를 만들 때 중요한 무기가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빅테크에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압도적인 품질’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상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하드웨어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게 소프트웨어의 힘”이라고 말했다.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가 지금처럼 하드웨어에만 집중해선 납품업체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용석 홍익대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소비 전력을 낮추고 해상도를 더 높이는 등 AR, VR 분야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기술력에서 더 앞서나가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플랫폼을 가진 빅테크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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