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달 27일 현대차·기아 공장에서 생산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400여 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 근로자는 적법한 사내하도급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므로 현대차·기아 본사가 이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내용이었다. 2010년, 2015년에도 대법원이 컨베이어벨트를 사용하는 직접공정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판단을 한 적이 있지만 이번 판결은 생산관리, 출고, 포장 등 간접공정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장 업계에서는 “제조업 도급의 종말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법원은 2015년 도급과 파견의 구별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원청이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원청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협력업체가 독자 결정권·전문성·독립된 조직이나 설비가 있는지 등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토대로 2019년 말 ‘근로자 파견의 판단 기준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당시는 ‘친노동’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때여서 주무부처로서 ‘성의’를 보인 것이지만, 정부 지침 개정은 사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사실상 제조업에서의 도급을 금지한다는 선언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 대한 이견도 적지 않다. 법원은 해당 업무가 전체 공정 중 일부라는 이유로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판단하고, 특히 원청의 생산관리시스템(MES)을 공유했다는 점도 불법파견의 요소로 판단한다. 원청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고,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었다는 증거라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제조업에서 연속공정의 일부가 아닌 업무는 무엇이며, 작업공정 공유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 나오는 대목이다.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 기업이 모든 근로자를 직접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번 채용하면 인력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법·제도 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마침 윤석열 정부는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를 떼주겠다며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 노동개혁을 선언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개혁은 ‘정상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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