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위트컴 장군 40주기로, 유엔기념공원은 그가 안장된 곳이다. 위트컴 장군은 1953년부터 2년여간 부산 미국 제2군수기지 사령관을 지내며 한국을 도왔고 전쟁 후에도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특히 1953년 11월 부산역 인근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상부 승인 없이 군수창고를 개방해 2만3000여 명분의 식량은 물론 의복 등 군수물자를 이재민들에게 지원했다.
이 일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 오히려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외에도 이재민 주택 건설, 도로 건설, 의료시설 건립 등을 지원하고 부산대를 비롯한 각급 학교 설립을 도와 한국과 부산을 재건했다. 장군은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함께 활동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 전쟁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에 남은 삶을 바치면서 ‘전쟁고아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생겼다.
1982년 7월 12일 작고한 장군은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따라 유엔기념공원 내 미국 묘역에서 영면에 들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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