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해양·수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아온 ‘모래주머니’ 규제 83개를 푼다. 항만 배후 단지 내 시설과 업종을 일일이 정했던 규제를 대거 없애 국내 항만을 제조와 물류가 결합된 복합산업단지로 만든다. 친환경·자율운항 선박 등 미래 첨단 기술 선점을 위해 시험운항을 위한 4단계 절차를 1단계로 줄인다.
여객업과의 충돌로 허용되지 않았던 섬과 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호핑투어’도 허용하고, 어항 입주 시설 규제도 풀어 해양레저·쇼핑이 어우러진 어촌을 조성한다. 이를 통해 2027년까지 전국 항만에 1조5000억원 규모의 신규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친환경 미래선박 시장 규모를 12조5000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낡은 덩어리 규제를 없애 항만·어촌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중점을 뒀다. 핵심 과제는 △항만·해양공간을 활용한 민간투자 촉진 △해양수산 신산업 육성기반 마련 △수산업·어촌 자생력 강화를 위한 지속성장 규제혁신 등 세 가지로 나눠진다.
해수부는 이번 방안에서 한국 항만의 고질적 한계로 지적된 저(低)부가가치 구조를 바꾸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뒀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은 작년 한해 동안 2199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해 세계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항만이 창출한 부가가치는 2016년 추산 연간 6조 원 정도로 싱가포르항의 35%,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의 40%에 불과했다.
해수부는 핵심 원인을 물류 기능에만 치우친 구조에서 찾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항만배후단지 입주기업의 58%가 물류업으로 화물 운송이나 하역, 창고 운영에 그치고 있다. 항만 터미널 배후에 수출입된 원자재·중간재를 활용한 제조 공장, 선박 수리 등 조선업 단지, 해양 금융 및 법률 컨설팅 업체 등 해운·항만 파생 산업이 밀집한 로테르담 등 고부가가치 항만과 다른 부분이다.
먼저 해수부는 제조업과 물류업 병행이 불가능했던 입주 기업 규제를 풀고 겸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외국에서 원단 수입하는 물류 업체가 자체 공장을 통해 의류 등 완제품 만들어 추가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기존엔 일반업무시설이나 주거·숙박 등 항만 근로자 지원 시설 입주만 가능했던 2종 항만배후단지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위험·유해시설 제외한 모든 시설의 입주를 허용하기로 했다. 아파트형 공장, 주거와 상업이 결합된 복합업무시설 입주가 가능해진다. 민간 개발사업 시행자에 대한 국유재산 특례기간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민간 투자 ‘인센티브’도 강화했다.
해수부는 이번 규제 개혁으로 2021년 367만TEU였던 항만배후단지 물동량을 2027년 545만TEU로 50% 가량 성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기간 입주 기업 수도 233개에서 409개로 늘고 2027년까지 5년 간 약 1조5000억원의 민간 투자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송상근 해수부 차관은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등 외국 선진항만에서는 배후단지를 통해 제조업이 이뤄져 화물이 창출된다”며 “이런 사례를 부산항 등 전국 항만에 많이 도입해 항만을 고부가가치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엔 신기술 설비 인증 시 안전기준, 시험, 승인, 검정 등 4단계를 거쳐야 했던 것을 1단계로 간소화해 상용화 기간을 약 1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기술 선점을 통해 2021년 2조2000억원 수준인 국내 친환경선박·장비 시장 규모를 5년 뒤 12조5000억원 규모로 키운단 계획이다.
수요자 관점에서 해양·레저관광 산업 관련 규제도 대거 푼다. 기존 여객 사업자와의 이해 충돌 우려로 허용되지 않았던 호핑투어를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는 섬에 기항하지 않는 단기 투어만이 가능했지만, 섬과 섬을 오가며 스쿠버다이빙과 섬관광을 연계한 상품 개발이 가능해진 셈이다. 지역특산물 판매장, 횟집 등만 입주가 가능했던 어항시설에 쇼핑센터와 일반 업무시설 설치를 허용해 어촌·어항에서 가능한 비즈니스 폭도 확대하기로 했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해양수산 현장의 애로사항과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혁신 과제를 실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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