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및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여야의 정쟁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국민의힘은 "유가족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 행위"라며 민주당 측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합동 분향소를 차리면서 희생자들의 명단과 영정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다시 촛불을 들고 해야 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숨기려고 하지 말라.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며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를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아들의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오열도 들린다"며 "당연히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일 문진석 민주당 의원이 이연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참사 희생자의 전체 명단과 사진이 공개되는 것은 기본"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을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내에선 '희생자 공개론'이 핵심 화두가 아니었다.
실제로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희생자 공개와 관련해 "만에 하나 그런 제안을 누군가 했다면 부적절한 의견으로, 그런 의견을 당내에서 논의할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다만 이 대표가 이날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서면서 민주당 기류는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희생자 공개 방침은 "비공개 수사원칙을 규정하는 법률 위반일 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 행위"라고 즉각 반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의원이 이 부원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와 관련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대하는 민주당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전의 광우병, 세월호에서의 행태를 그대로 재연해 정치적 이득을 노리려는 것으로, 국가적 애도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국민적 비극을 정치공세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촉구했다.
장제원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진정 책임자 처벌보다 희생자 얼굴과 프로필을 공개하는 게 더 시급한가. 이분들과 함께 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마저 든다"며 "유가족들과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장 의원은 "이게 말끝마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할 짓인가. '사람은 못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민주당의 속마음을 안 이상, 이제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총리 사퇴, 국정 쇄신과 같은 요구도 모두 정략의 소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마저도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기회로 삼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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