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절경을 꼭 닮은 홀이 국내 골프장에 있다. 경기 북부 포천힐스CC의 팰리스 코스 6번홀(파4)이다. 티잉 에이리어에 올라서면 왜 ‘하롱베이 홀’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홀이다. 물과 바위가 어우러진 모습이 10여 년 전 대한항공 TV 광고에서 봤던 하롱베이를 꼭 닮아서다.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만날 수 있는 천하의 절경을, 비록 ‘미니어처 버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쉽게 두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펼쳐진 압도적인 광경에 드라이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롱베이 홀은 이런 포천힐스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홀이다.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아름다워서 골프장의 얼굴이 됐다. 연못에 솟아 있는 다섯 개의 바위섬은 조경을 위해 갖다놓은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자연석 그대로다. 2008년 터파기 공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대형 화강암을 없애는 대신 주변을 물로 채웠다. 따로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바위섬 여기저기에 소나무가 올라오더니, 몇 년 전부터는 왜가리 한 마리가 바위섬 꼭대기에 둥지를 틀었다.
‘미니 하롱베이’를 감상하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바위섬을 넘겨 공을 페어웨이에 떨구는 게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좌(左) 도그레그 홀인 만큼 티샷이 당겨지면 세컨드 샷을 할 때 그린이 안 보인다. 밀리면 그만큼 그린에서 멀어진다. 머릿속으로 되뇌인 ‘멀리, 똑바로’ 주문이 손으로 전달됐는지,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게 캐디 눈에도 보였던 모양이다. “힘 빼고 치세요. 왼쪽으로 170m, 오른쪽으로 150m만 캐리로 날리면 해저드는 넘깁니다. 방향은 나중 문제니, 일단 정타를 맞추는 데 신경 쓰세요.”
힘을 뺀 덕분일까. 티샷은 210m 정도 날아가 페어웨이 왼쪽에 떨어졌다. 314m(화이트 티 기준)짜리 파4홀인 만큼 피칭 웨지로 ‘2온’ 할 수 있는 거리가 남았다. 누군가 ‘가장 자신 있는 거리가 몇 m냐’고 물을 때마다 언제나 “100m”라고 답했던 터다. 딱 그 거리였는데, ‘뒤땅’을 쳤다. 공은 70m 정도 굴러가다 멈췄다. 마음을 다잡고 친 56도 웨지 샷은 컸다. 핀을 7m나 지났다. 투 퍼트, 보기로 홀아웃했다.
그리 자책할 일은 아니었다. KLPGA 투어에서 3승을 올린 박현경(22)도 올해 대회 1라운드 이 홀에서 보기를 적어냈다. 신종선 포천힐스CC 경기팀장은 “페어웨이는 넓지만 좌 도그레그여서 티샷이 좌측으로 당겨지면 그린 공략이 쉽지 않다”며 “세컨드 샷 캐리 거리가 정확하지 않으면 3퍼트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꽃은 가시를 숨기고 있다고 했던가. 이 홀은 국내에선 흔치 않은 ‘아일랜드 파4’다. 그린을 섬처럼 뚝 떼어놓은 아일랜드 홀은 대부분 파3지만, 이 홀은 세컨드 샷으로 아일랜드 그린에 공을 올려야 한다. 아일랜드 파4에서는 세컨드 샷이 물에 빠지면 네 번째에 어프로치를 해야 하는 만큼 더블 보기 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전장(화이트 티 기준 316m)이 비교적 짧아 쇼트 아이언으로 그린을 노릴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KLPGA 대회는 포천힐스CC에 해마다 수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2년 전 김지영(26)에게 ‘1142일 만의 우승’을 안겨준 팰리스 코스 9번홀(파5)이 그렇다. 김지영은 당시 연장 2차전 때 이 홀에서 이글을 기록하며 박민지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가든 코스 8번홀(파4·285m)은 ‘국민 타자’ 이승엽(46)이 티샷으로 ‘원 온’한 홀로 유명하다. 캐슬 코스는 포천힐스CC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성돼 있다. 이 덕분에 티잉 에이리어에 설 때마다 포천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천힐스CC는 난도가 높은 편이다. ‘멀리, 똑바로’ 쳐야 파 세이브를 할 수 있는 홀이 많다. “미스 샷에 대한 페널티도, 굿샷의 보상도 확실한 코스”(올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우승자 박민지)란 평가다.
포천=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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