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 아닌가요?"…서울에 앉아 글로벌 브랜드 만드는 법 [긱스]

입력 2022-11-21 10:07   수정 2022-11-21 13:58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엄수원 아드리엘 대표의 특징은 '속도전'입니다. 첫 창업인 금융 인공지능(AI) 업체가 매각까지 걸린 시간은 8개월이었습니다. 현재 운영 중인 광고 스타트업 아드리엘은 창업 1년 반 만에 6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4년이 지나선 누적 투자액이 200억원을 넘겼습니다. 해외 진출이 빨랐던 것이 그 비결입니다. 그렇다고 엄 대표가 해외에 상주했던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필요성을 알지만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글로벌 사업, 그는 어떻게 한국에 앉아 글로벌 '스케일업'을 이루었던 것일까요? 한경 긱스(Geeks)에 보내온 비결을 소개합니다.

“아드리엘, 미국 회사 아닌가요?”

사업 초기, 고객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곤 했다. 2018년 초 100% 한국 법인으로 창업해 지금까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운영하고 있지만, 회사를 미국이나 유럽 회사로 착각하는 분들을 만난다. “아드리엘은 한국 법인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어떻게 초기부터 글로벌 지향적 회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질문을 받는다.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초기 스타트업은 자본도 인력도 부족하다. 처음부터 조각배에 열정만 가득 싣고 글로벌 시장이라는 망망대해에 나가는 일이다. 수많은 고민과 시도, 그리고 쓰디쓴 실패의 과정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진출에 대한 고군분투 과정을 창업가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눠본다.
보편적 문제 풀어라…해외 피드백 '필수'
나와 공동창업자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 아이템을 정할 때부터 “서울 사무실에 앉아서도 지구 반대편의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가”를 고려했다. 그렇게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스타트업인 아드리엘을 창업했다. 아드리엘은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광고 성과 데이터를 쉽게 수집·분석하여 다음 마케팅 전략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일단 웹 기반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제품의 특성상 글로벌 유통이 용이했다. 또한 최근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 자리 잡은 구글, 메타(구 페이스북), 틱톡 등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주로 광고 매체로 활용하고 있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부분 마케터가 비슷한 문제와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업 아이템은 괜찮았지만, 생각보다 서울 사무실에 앉아 해외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어려웠다. 열심히 영문 웹사이트를 만들고 최대한 해외 업체들의 디자인을 참고하여 마케팅과 영업을 위한 자료들을 만들었지만 이게 잘 만든 건지,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수준인지, 심지어 이 제품을 정말 필요로 할지조차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브로슈어를 들고 무작정 해외 출장을 다니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일단은 웹사이트로 사람들을 유입해서 사이트 내의 유저 행동 패턴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웹사이트에 실시간 채팅과 이메일을 통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여기저기 배치하여 지구 반대편 고객들과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했고, 구글 애널리틱스를 세팅하여 웹사이트 방문자들의 행동 로그를 기록하고 분석했다. 소액으로 SNS 광고를 진행했고, 구글 검색 광고도 했다.



프로토타입 제품도 없이 제품 컨셉으로 광고를 돌려 수많은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낸 뒤 투자를 받고 성장했던 '기업가치 10조원' 드랍박스를 벤치마킹하여,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능에 대해서도 “베타 출시 예정”이라고 작게 표시하고 열심히 홍보했다.

SNS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게 우리를 노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간혹 눈먼 돈이 나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기술 플랫폼에 관심이 있는 기업 마케터들을 유입하고 싶었는데, 하루는 15세의 꿈 많은 미국 소년이 K-POP 스타가 되고 싶다고 고객 상담창에 남겨서 한참 인생 상담을 해 준 적도 있었다. 좀 더 우리 제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집중해야겠다고 판단이 섰다.

해외 얼리어답터들이 많이 방문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마켓 플레이스에 제품을 올려놓고 홍보했다. 웹 또는 앱 소프트웨어를 막 출시했을 때 제품 홍보를 할 수 있는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홍보하여 초기유저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앱스모 (Appsumo)', 기업용 소프트웨어 고객 리뷰를 확보할 수 있는 '캡테라(Capterra)' 'G2' 등의 사이트가 대표적인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을 진행하며 잠재 고객들과 소통하다 보면, 눈을 가리고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듯한 막막한 상황을 타개하고 해외 시장을 위한 제품 및 마케팅 방향성을 좀더 명확하게 설정해 나갈 수 있다.
고객으로 글로벌 경쟁 구도를 이해하라
해외 고객들과 소통하다 보면 얻게 되는 가장 귀중한 정보가 바로 경쟁사 정보다. 우리 제품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잠재 고객은 매우 훌륭한 첩보원과 다름없다. 고객들은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 것과 가장 비슷한 다른 경쟁 제품을 써보고, 장단점을 분석하고, 이런 정보를 쉽게 전달해준다. 경쟁 제품 대비 아드리엘의 제품이 얼마나 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과연 가성비가 좋은 선택인지 누구보다도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고객이기 때문에, 그들은 집요하리만치 경쟁사의 장점을 전달해준다.

“OOO는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던데, 너희도 제공하니? OOO 말고 너희 제품을 써야 하는 이유를 좀 설명해줄래?” 고객이 이런 질문을 툭 던지면 투자자가 경쟁사 대비 기술적 차별점을 알려 달라고 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가끔은 열심히 설명하고 나서도 뼈아픈 피드백을 듣기도 한다. 고객과 대화하면 할수록 이 세상엔 정말 없는 게 없구나, 우리만 가지고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인 줄 알았는데 이걸 하는 업체가 또 있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경쟁사에 대해 알게 될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가장 흥분되고 열정적인 상태가 된다. 30분 정도는 “이걸 하는 곳이 또 있다고? 이곳은 투자도 우리보다 많이 받았네?”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다가, 스트레스와 흥분 상태를 잘 분간하지 못하는 나의 뇌 탓인지 금세 “두고 보라지,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의 전환과 함께 열정 모드로 업무를 하게 된다. 오히려 해외 경쟁사가 많다는 것이 아이템의 사업성과 시장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경쟁사 대표의 유튜브 인터뷰를 찾아보며 초기 사업 확장 방법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경쟁사의 제품을 몰래 직접 써보며 그들의 세일즈 방식과 제품 경쟁력, 아드리엘 대비 장단점에 대해 꼼꼼히 공부했다. 동시에 제품의 강점에 대해 타사 대비 경쟁력 관점으로 정리하여 고객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렇게 30개 이상의 경쟁사 대비 포지셔닝을 재정의할 수 있었고, 향후 제품 개발 방향성과 마케팅 슬로건을 정의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뼈대를 구성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쟁 구도의 재구성 과정을 통해 가보지도 않은 해외 시장을 머리 속으로 그리며 좀더 손에 잡히는 형태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해외 진출은 마라톤…팀만 잘 골라도 성공

스타트업의 해외 사업 확장은 그야말로 멀티태스킹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딱 맞는다. 전혀 해 보지 않았던 영역도 내 의무가 된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팀워크다. 2~3인의 전담팀을 구성하고 그들에게 큰 목표와 그 목표에 따른 우선순위를 잘 전달해야 한다. 명확한 방향성을 이해한 상태에서 최대한 각자의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90년대생 이후의 젊은 세대는 유학파가 많다. 페이스북 유학생 커뮤니티 등 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들을 열심히 찾아보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부러운 친구들을 멤버로 영입할 기회는 충분하다. 또한 한국의 위상이 여러모로 높아지며 미국과 유럽 출신의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찾고자 구직하는 경우도 많다.

아드리엘은 다양한 해외 채용 플랫폼과 페이스북 커뮤니티를 통해 젊고 열정적인 영미권 인재를 유치해왔다. 아드리엘의 제품 개발팀과 영업 마케팅팀에는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폴란드까지 다양한 국적의 인재들이 정규직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경우 외국인 비자 발급이 별도 쿼터 제한 없이 가능한데, 리소스 절약을 위해 비자 발급 전문 업체를 통해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업무 영역에 따라 내부 팀 구성보다 전문 에이전시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나은 경우도 많다. 특히 검색 엔진 최적화, 기업 블로그 관리, PR 기사 등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은 처음부터 자체적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리소스가 헛되이 낭비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프리랜서 구인 사이트 '업워크(Upwork)'등을 통해 전문 프리랜서 및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아드리엘을 초반부터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과정은 다양한 시도와 많은 실패, 작은 성공의 '카오스'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결국 창업자와 팀의 비전이다. 창업도 해외 사업 확장도 어려움의 연속이기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그때마다 우리 제품을 지구 반대편 사람들도 좋아하게 만들겠다며 오기로 더욱 타오르는 열정, 영어가 모국어가 아님에도 목소리만은 당당하게 발표를 하는 거침없는 자신감, 미국·유럽 발(發) 기업만 글로벌 기업이라는 인식을 바꿔버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스타트업 글로벌 브랜딩의 첫걸음이 아닐까.
엄수원 아드리엘 대표

△서울과학고 졸업
△서울대 화학과?경영학과 학사
△파리공립경영대학원(HEC Paris) 재무금융학 석사
△올리버 와이만 금융부문 컨설턴트
△AXA손해보험 한국지사 전략기획실장
△솔리드웨어 공동대표
△포브스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선정
△UN 디지털 협력 고위급 패널리스트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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