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이태원 충격'…또 제기된 '국가 무한책임론', 타당한 것인가

입력 2022-11-14 10:00   수정 2022-11-14 15:55


상상도 못한 ‘이태원 참사’로 많은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이런 초대형 사고나 큰 재난이 발생할 때면 불거지곤 하는 것이 ‘국가 책임론’이다. 국가의 ‘무한책임론’까지 나온다. 참사나 재앙적 사고에 대한 피해 수습과 더불어 나라가 경제적 보상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배상론이다. 하지만 유무형의 배상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법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 무엇이 법 위반인지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이와 별개로 특정 공무원에 대한 책임 추궁은 몰라도, 무형의 실체인 국가에 책임을 묻는 행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개별 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론은 일종의 집단적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고, ‘무한책임론은 무한간섭론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경계의 대상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찬성] 국가는 국민 안전에 총괄 책임져야 정부·지자체 사고 보상 선례 많아
국가는 국민 안전에 총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태원 참사에서도 경찰의 사전 준비나 사후 대응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시민 안전에 책임져야 할 경찰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심지어 사고 후 출동한 소방조차 인명 구조 역할을 최대한 수행했는지에 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이 모든 게 국가가 기본 안전 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니 국가 혹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더구나 정부는 ‘안전한 국가’ ‘안전한 사회’를 이루겠다고 다짐해왔다. 설령 윤석열 정부가 직접 이런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더라도 전임 문재인 정부 때 한 약속이 있으니 정부의 연속성 차원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 의무로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 등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에게 의무가 있다면, 누릴 권리도 있다. 안전은 국민으로서 개인이 누릴 대표적 권한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배상한 사례도 있다. 2003년 192명이 목숨을 잃은 대구지하철 화재, 1994년 32명이 숨진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 2014년 304명이 사망·실종한 세월호 사고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대구시·서울시)가 유족에 보상을 했다. 대구지하철 사고 때는 대구시(의회)가 조례를 만들어 보상했고, 세월호 때는 특별법도 제정됐다. 공무원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국민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정부나 해당 지자체가 인정해 공식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섰던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도 같은 보상이 적용돼야 한다. 원인 규명을 해나가다 보면 경찰이나 구청 등 공무원의 잘못도 확인될 것이다. 이게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이든 아니든 정부가 총괄 책임져야 한다. 수백조 원 규모의 예산을 매년 편성·지출하는 정부에는 재원도 있다. 정부를 구성, 운영하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일이 아니다.
[반대] 500명 숨진 삼풍 때도 국가배상 없어 '국가 책임' 커지면 국민 간섭·통제도 커져
국가 책임론이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남발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아무도 예측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불의의 사고까지 국가가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직무의 해태나 유기, 독직 등 관련 공무원의 명백한 잘못이 드러난다면 또 모르지만, 잘못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막연한 국가 책임론은 근거도 없고 선동적이다. 1995년 500여 명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를 돌아보면,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무단 증축을 눈감아준 사실까지 드러났지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번 이태원 사고가 건물 전체가 내려앉은 삼풍백화점 때보다 공무원(정부) 연관성이 더하다고 할 근거가 있나. 공무원 잘못은 관련법에 따라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게 국가 책임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국가는 전 국민을 위한 존재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전부 직접 책임지면 다수를 위하는 기능이 손상될 수밖에 없고, 이는 나라 전체의 손해로 귀결된다. 이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국가의 무한책임론은 국가가 유사 사고를 막는다는 명분에서 무한의 간섭·감독권을 발동할 수도 있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가령 안전사고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은 안전 유지를 이유로 국민에 대한 온갖 간섭과 통제를 남발하는 근거가 된다. 그게 통제 행정이고, 독재 정부다. ‘국민통제 정부’로 가면 민주주의의 역행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고 예방, 안전 강화도 중요하지만 자유로운 시민에 대한 간섭·통제·감독을 쉽게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가치로 보면 시민의 기본 자유권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개별 공무원의 잘못이 있다면 그에 따른 합리적 문책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공무원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라. 규제가 겹겹이 넘쳐나면서 정부가 국민 개인에게 어떤 강압적 요구를 할지 무섭다.
√ 생각하기 - '전지전능 정부', '초강력 통제 권력' 될 수 있어…법과 규정대로 정확·충실하게
국가 책임을 키울수록 정부의 국민 간섭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민 자유권은 한껏 보장하면서 모든 사고에 대한 정부 책임도 무한대로 간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유로운 기본권 신장과 통제 기반의 정부 책임 강화론은 배타적 가치다. 결국 선택의 문제가 된다. 규제의 탄생 회로에 시사점이 있다. 늘 규제 혁파론이 나오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정부가 규제 개혁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규제는 늘어난다. 신설 규제 하나하나마다 명분이 있다. 안전 문제로 대책을 세울 때도 대책의 상당 부분은 새 규제다. 산업 정책, 온갖 시장 대책에 늘 그런 속성이 있다. 공무원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말려야 한다. 정답은 ‘법과 규정에 정해진 대로, 정확하고 충실하게’다. 실현도 불가능한 ‘전지전능 국가’ 요구는 ‘초강력 통제 권력’만 키울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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