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한 ‘이태원 참사’로 많은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이런 초대형 사고나 큰 재난이 발생할 때면 불거지곤 하는 것이 ‘국가 책임론’이다. 국가의 ‘무한책임론’까지 나온다. 참사나 재앙적 사고에 대한 피해 수습과 더불어 나라가 경제적 보상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배상론이다. 하지만 유무형의 배상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법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 무엇이 법 위반인지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이와 별개로 특정 공무원에 대한 책임 추궁은 몰라도, 무형의 실체인 국가에 책임을 묻는 행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개별 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론은 일종의 집단적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고, ‘무한책임론은 무한간섭론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경계의 대상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더구나 정부는 ‘안전한 국가’ ‘안전한 사회’를 이루겠다고 다짐해왔다. 설령 윤석열 정부가 직접 이런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더라도 전임 문재인 정부 때 한 약속이 있으니 정부의 연속성 차원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 의무로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 등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에게 의무가 있다면, 누릴 권리도 있다. 안전은 국민으로서 개인이 누릴 대표적 권한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배상한 사례도 있다. 2003년 192명이 목숨을 잃은 대구지하철 화재, 1994년 32명이 숨진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 2014년 304명이 사망·실종한 세월호 사고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대구시·서울시)가 유족에 보상을 했다. 대구지하철 사고 때는 대구시(의회)가 조례를 만들어 보상했고, 세월호 때는 특별법도 제정됐다. 공무원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국민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정부나 해당 지자체가 인정해 공식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섰던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도 같은 보상이 적용돼야 한다. 원인 규명을 해나가다 보면 경찰이나 구청 등 공무원의 잘못도 확인될 것이다. 이게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이든 아니든 정부가 총괄 책임져야 한다. 수백조 원 규모의 예산을 매년 편성·지출하는 정부에는 재원도 있다. 정부를 구성, 운영하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일이 아니다.
이번 이태원 사고가 건물 전체가 내려앉은 삼풍백화점 때보다 공무원(정부) 연관성이 더하다고 할 근거가 있나. 공무원 잘못은 관련법에 따라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게 국가 책임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국가는 전 국민을 위한 존재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전부 직접 책임지면 다수를 위하는 기능이 손상될 수밖에 없고, 이는 나라 전체의 손해로 귀결된다. 이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국가의 무한책임론은 국가가 유사 사고를 막는다는 명분에서 무한의 간섭·감독권을 발동할 수도 있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가령 안전사고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은 안전 유지를 이유로 국민에 대한 온갖 간섭과 통제를 남발하는 근거가 된다. 그게 통제 행정이고, 독재 정부다. ‘국민통제 정부’로 가면 민주주의의 역행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고 예방, 안전 강화도 중요하지만 자유로운 시민에 대한 간섭·통제·감독을 쉽게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가치로 보면 시민의 기본 자유권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개별 공무원의 잘못이 있다면 그에 따른 합리적 문책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공무원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라. 규제가 겹겹이 넘쳐나면서 정부가 국민 개인에게 어떤 강압적 요구를 할지 무섭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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