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하회하면서 전세계 증권시장이 일제히 환호했다. 물가 정점이 확인된만큼 미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향방에 일희일비하던 '역금융장세'가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시를 끌어올렸다. 코스피지수도 2500선에 바짝 다가서면서 증시가 저점을 통과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 구간에 들어서면서 역실적장세(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증시 하락)를 준비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전날 발표된 미국 10월 CPI(7.7%)가 전달(8.2%)은 물론 시장 전망치(7.9%)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증시에 훈풍을 몰고 왔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정점을 찍은만큼 미 Fed의 금리 인상 속도도 둔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번졌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1, 12월 CPI도 기저효과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3781억원, 기관 투자가는 6592억원을 사들이고 있다. 두 주체가 반도체를 집중 매입하면서 삼성전자는 3.48% 상승한 6만2500원에 거래 중이다. SK하이닉스도 4.38% 오름세다.
특히 가파른 금리 인상에 눌려있던 성장주가 크게 반등하고 있다. 카카오(16.51%), 카카오뱅크(26.14%), 카카오게임즈(15.59%), 카카오페이(29.92%) 등 카카오그룹주가 급등세다. 네이버도 10.51% 상승했다.
엔씨소프트(13.29%) 크래프톤(14.32%) 등 게임주도 일제히 상승 중이다.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환호했다. 홍콩 H지수(5.67%)가 가장 큰 폭으로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대만 가권지수(3.61%), 일본 닛케이225지수(2.75%),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25%) 등도 큰 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전날 미 나스닥 지수(7.35%)는 2년 새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시장 참가자들의 논쟁 주제는 곧 인플레이션에서 경기침체로 넘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선 저마다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미국의 소비와 고용이 지탱하고 있는 상황에서 깊은 침체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센터장은 "경기침체 논쟁으로 인해 소폭 하락조정이 오더라도 내년 2분기부터는 지금 수준을 넘어서는 반등이 시작될 것"이라며 "내년 상장사 순이익 예상치(164조원)을 감안하면 2600~2800선까지도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지난 9월까지 증시에 선반영됐다고 본다"며 "1년 이상 장기시계열로 내다봤을 때 증시는 저점을 지나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기업 감익으로 인해 연말부터 다시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내 상장사 136개의 올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전월대비 18.1% 감소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경기 둔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미 Fed는 다시 통화정책을 강화해야하는 딜레마에 놓여있다"며 "실제 경기가 둔화되고 기업 이익이 꺾이면 지금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이 싸보이는 주식들도 더 이상 저렴해보이지 않으면서 2차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도 "지금의 반등은 추세적 반등이라기 보다 베어마켓 랠리"라며 "경기가 충분히 둔화된 이후에야 미 Fed는 금리를 내리고 시장은 추세적 반등세에 올라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대표도 “내년 부동산 시장이 악화되면서 금융 시장 등 경기 전반이 둔화될 수 있다”며 “내년에도 박스권이 이어지는 흐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IBK투자증권은 '금리 정점론'으로 인해 대표적인 낙폭과대 성장주인 인터넷과 게임주가 내년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반짝 상승'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김 센터장은 "낙폭과대에 따른 일시적인 되돌림 현상은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은데다 성장성도 입증되지 못한 상태"라며 "절대적인 금리 수준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큰 폭의 상승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와 2차전지 업종을 주의깊게 볼 때라고 조언했다. 이 센터장은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위탁생산(CMO) 업종은 글로벌 미중 공급망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연말까지는 '차이나런' 자금이 국내 반도체주로 유입되는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며 "2차전지 가운데서도 리튬, 니켈 등 원료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기업들도 상승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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