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장에 나온 윤희근 경찰청장이 13시간20분 동안 54번이나 마이크 앞에 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작 예산 집행을 책임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번 말하는 데 그쳤다. 추 장관에게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편성했는지 묻는 의원은 두세 명뿐이었다.
각 상임위원회 상황도 비슷했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8일 연 윤석열 정부의 첫 대통령실 국정감사는 ‘풍산개 논란’으로 얼룩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로 받은 풍산개 두 마리를 정부에 반환한 게 화두였다. 여당은 “사료값이 아까웠느냐”고 비판했고, 야당은 “사육비 지원을 위한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고 맞붙었다. 10일과 11일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윤 대통령 해외 순방에서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것을 놓고 싸웠다. 이때도 여야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아예 청와대 기자실에 대못질을 했다”며 또다시 공방을 벌였다. 당초 논의하기로 한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뒷전이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639조원으로 편성됐다. 이 중에는 금융 취약계층 및 장애인·중증 환자 지원 등 민생 예산이 대거 포함돼 있다. 반대로 걸러내야 할 지역구 ‘선심성 예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는지 심사해야 할 국회는 ‘예산국회’ 1주일을 정쟁으로 허비했다. 더구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정조사 추진을 두고 여야 대치는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법정 기한인 다음달 2일까지 예산안 처리는 어렵고,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데는 열심인 여야 의원들이 국가 전체 예산이 제대로 편성돼 있는지 살피는 데는 소홀한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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