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2022년 11월 9일자 A2면 참조
11일 법조계에선 이전 집주인이 근저당이 없는 것처럼 위조한 은행 서류를 그대로 반영한 등기를 믿고 집을 샀다가 피해를 본 사건과 관련해 “공무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 국가 배상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다수 내놨다.
사건에서 전 집주인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뒤 마치 대출을 모두 갚은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등기소를 통해 과거 이력을 지웠다. 깨끗한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장씨 부부는 집을 산 뒤 은행에서 다시 대출받아 집을 샀고 대출금까지 모두 갚았다. 하지만 장씨 부부는 결국 집을 잃게 됐다. 법원이 위조된 서류에 기반한 등기부등본이라도 원래 근저당권자인 은행이 선순위 법적 채권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장씨 부부 사건처럼 등기소가 위조된 서류를 받아 등기를 변경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이를 확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 판결이 다수 존재한다. 1993년 8월 대법원은 등기신청 서류가 위조됐음을 발견하지 못한 등기 공무원이 심사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위조 인감증명서 형식에 문제가 있었는데, 담당 공무원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부동산 소유권 이전에 쓰이는 정상적인 인감증명은 보통 유효기간이 1개월인데, 위조 인감증명은 유효기간이 3개월로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은 “등기 공무원이 형식적 심사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수호 법률사무소 초록 변호사는 “법적으로 등기 공무원은 서류의 위변조 여부를 따질 의무는 없지만 서류의 형식이 맞는지는 반드시 심사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부실 등기 피해자인 경기동부과수농업협동조합에 7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 사건에선 범인이 주민등록초본과 제적등본 등을 위조해 경기 이천시의 토지 소유권을 자기 앞으로 돌려놓고, 그 땅을 담보로 9억원을 대출받았다. 땅의 원래 주인은 이 대출금 9억원의 손해를 봤는데, 법원에서는 “위조서류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손해액 80%를 인정해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등기부등본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이 바뀌지 않으면 부실 등기로 인한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1년 논문에서 “이제는 등기부의 공신력을 인정해 부동산 거래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라고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