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둔화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정부가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각종 규제 완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얼어붙은 매수세는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한국은행의 가파른 금리 인상, 집 값 고점 인식, 경기 둔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입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지역을 풀고, 대출 규제를 완화해도 실수요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파르게 불어난 대출이자 부담에 집을 사거나 상급지로 이동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최근 서울과 경기 성남(분당·수정), 과천, 하남, 광명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해제했습니다. 이와 함께 규제지역 여부나 주택가격에 관계없이 다음 달 1일부터 무주택자나 이사를 계획 중인 1주택자는 집값의 5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은행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거래 절벽이 오고 매매 시장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가 되면서 인천·경기 규제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규제 완화 요청이 이어진 걸 받아들인 겁니다.
이같은 조치에도 실수요자들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분양시장과 기존 주택 거래에 다소 숨통을 터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부동산 시장의 심리가 상당히 위축돼 있어 분위기 반전보단 연착륙에 소폭 도움이 되는 정도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부동산 시장 침체는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초고가 단지에선 신고가 경신 사례가 나오고, 중저가 단지가 몰린 지역에선 가파른 집 값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반포주공1단지(전용면적 140㎡ 기준)는 올 5월 초 71억원(4층)에 최고가로 매매가 이뤄졌습니다. 올 9월 말엔 서울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전용면적 264㎡ 기준) 복층형 펜트하우스가 130억원에 팔렸습니다.
이에 비해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서울 외곽 지역의 집 값 하락세는 뚜렷해 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매) 수요가 몰린 노원구의 경우 대출이자 부담이 늘면서 올 들어 집 값 하락률이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지난달 말 노원구 월계동 월계센트럴아이파크(전용면적 84㎡ 기준)는 7억50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지난해 8월엔 12억5000만원에 매매 거래가 이뤄졌던 점과 비교해보면 5억원이 급락했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강남권 초고가 단지들은 아무래도 자산가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집 값 하락세가 완만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중저가 단지가 몰려 있는 서울 외곽 지역은 대출이자 부담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 집 값 하락세가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