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3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한다. 지난 9월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만난 후 약 2개월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을 잇따라 갖고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번엔 日이 먼저 회담 언급, 韓 전날 "확정"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2일 캄보디아 한 호텔의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갖고 "방금 한·일 정상회담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순서는 가변적일 수 있지만 한·일, 한·미, 한·미·일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대통령실은 불과 열흘 전인 지난 3일까지만 해도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4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징용공(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의 진전이 보이지 않아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면서도 "한·일 양국은 양자 정상회담의 개최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한·일 회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언급보다 가능성을 더 열어둔 것이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동남아시아 순방 출발 전날인 11일 기자들과 만나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한국 및 중국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며 직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통령실이 한·일 회담 전날까지 개최 여부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지난 뉴욕 유엔총회 당시 막판까지 한·일 회담 가능성이 불투명했던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기시다 총리가 "(한·일 회담을) 흔쾌히 합의했다"는 우리 측 언급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양국 외교당국은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대통령실 한 참모는 "한·일 간의 회담 문제는 언제나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연이은 무력 도발도 한·일 정상회담의 성사 배경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도발이 보다 빈번해지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보 현안이 한·일, 그에 앞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일종의 추동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라고 분석했다.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을 폭넓게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尹 어떤 형태로든 IRA 문제 제기할 것"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는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주요 의제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무력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이다.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최근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상당한 확장 억제 강화 조치가 이뤄졌지만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실질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기로 하지 않았나"라며 "그 연장선상에서 한·미 간 지속적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차별을 담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 번 전할 전망이다. 이 고위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IRA 문제와 관련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말할지는 확인이 힘든 상태"라며 "윤 대통령은 어떤 형태로든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은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3국의 공동대응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3국은 북한 7차 핵실험 시 연합훈련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3국 공조 아래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中 리커창과도 환담 … 북 비핵화 문제 공유
윤 대통령은 12일 중국 리커창 총리와도 약식 회담을 가졌다. 김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대기실에서 환담을 나눴다"고 전했다.이 고위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상호 존중과 호혜 원칙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고, 북한 핵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며 "리커창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전례 없는 빈도의 도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아세안 연대구상, 과거 정책 일부 계승
김 실장은 브리핑에서 전날 윤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아세안 연대구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김 실장은 "우리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서 추진하고자 하는 비전은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태 지역"이라며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을 비롯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전날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없던 '한·미동맹'이라는 표현을 덧붙인 것이다. 김 실장은 "자유,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의 수호를 핵심 요소로 반영하고 이를 대내외에 분명하게 천명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보조를 맞춘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또 김 실장은 한-아세안 연대구상에 대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큰 구상 아래 어떻게 하면 아세안에 특화된 협력을 추진해나갈지에 대한 세부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정책을 완전히 폐기했는지 폐기하지 않았는지 그런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잘된 부분을 계승하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보완하는 방향으로 접근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이 문재인 정부의 아세안 지역 전략인 '신남방정책'을 일부 계승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김 실장은 "물론 과거와 차이가 있다"며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을 우리 기업의 수출 시장이라는 경제적 시각에서 주로 바라봤다면 윤 정부는 경제적 측면을 더해 아세안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세안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을 최초로 공식 제안한 것도 의미가 크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아세안이 대화 상대국과 맺는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프놈펜=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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