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감은 미미하다. 이건 (기업에) 상당히 좋은 일이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63·사진)는 회사 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수장이 한 말치고는 무척 겸손하다. 그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고먼 CEO에 대해 “여느 월가 CEO와는 다른 (겸손한) 모습”이라며 “하지만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않고도 월가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월가에서 호주 변호사 출신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1958년 호주에서 태어난 그는 호주 멜버른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82년 글로벌 로펌인 DLA파이퍼에 변호사로 입사했다. 1987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고 첫발을 내디딘 곳도 월가가 아니라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였다. 컨설턴트로 10년간 활약하며 시니어 파트너(사장급)를 찍은 뒤 1999년 메릴린치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선임됐다. 처음 월가 금융권에 입성한 뒤 그는 메릴린치의 자산운용업을 총괄했다. 2007년에는 모건스탠리 공동 사장으로 취임하며 둥지를 바꿨고 다음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금융위기를 진화할 소방수로 CEO에 선임된 그는 지금껏 13년째 모건스탠리를 이끌고 있다. 실적만 두고 임기를 결정하는 월가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러셀3000에 편입된 금융기업 CEO의 임기는 2017년 약 15년이었지만 2020년 7년으로 반토막 났다.
모건스탠리 주가는 그가 취임한 뒤 2021년까지 217.6% 상승했다. 같은 기간 주가 상승률로 모건스탠리를 앞지른 투자은행은 없다. 2010년 4%를 밑돌던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지난해까지 13%대로 끌어올렸다.
고먼 CEO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던 2009년 1월부터 씨티그룹과 공동으로 소유하던 증권사 스미스바니 인수작업을 주도했다. 지분의 51%를 보유한 씨티그룹으로부터 일부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가져왔다.
체질 개선을 위한 조치였다. 1940년대부터 자산운용업을 해온 모건스탠리는 1999년 운용자금을 세계 최대인 4250억달러까지 불렸지만 이후 추락하기 시작했다. 기업 상장, 인수합병(M&A)·구조조정 자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기업금융에만 치중한 탓이다. 2009년 운용 자회사(밴캠펜)를 15억달러에 팔아치운 뒤엔 운용자산 기준으로 세계 40위권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개인투자자가 중심인 밴캠펜 대신 기관투자가를 주요 고객으로 둔 스미스바니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2013년 씨티그룹으로부터 자산 1조6500억달러, 투자자문사 1만7000여 명을 둔 스미스바니를 인수하며 모건스탠리는 ‘자산운용 왕국’으로 부활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2020년 불어닥친 코로나19 충격 속에서도 M&A에 나섰다. 그해 10월 100년 역사를 지닌 자산운용사 이튼반스를 인수했다.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를 110억달러에 매입한 지 1주일도 채 안 돼서다.
모건스탠리는 이튼반스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구현했다. 이튼반스를 인수한 뒤 운용자산(AUM)이 1조2000억달러를 돌파하며 ‘1조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매출에서 자산운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43%로 끌어올렸다. 이트레이드가 보유한 퇴직연금 자산을 확보한 것도 성과다,
그는 매년 새해 첫날 맨해튼 본사 사무실에 출근해 1년간의 개인 목표를 작성한다. 그리고 이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단어를 빼곡히 적은 메모장을 늘 와이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장기 전략을 검토한다. 매일 전 세계 지점이 올린 실적을 받아 직접 종이에 적어 기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10월 초특급 허리케인 샌디가 맨해튼을 덮쳤을 때 다음날 새벽 가장 먼저 타임스스퀘어 본사에 출근해 물에 잠긴 사무실을 정리하기도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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