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 해도 김영수(32)는 그저 그런 골퍼 중 한 명이었다. 프로에 데뷔한 지 11년이 다 되도록 우승컵 한번 들어 올리지 못했다. 2부 투어도 다녀왔다.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을 낸 해가 상금랭킹 18위(2억3000만원)에 오른 작년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모든 게 바뀌었다. 생애 첫 우승을 지난달 9일 열린 코리안투어 넘버원 대회 제네시스 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에서 거둔 지 한 달 만에 두 번째 우승컵을 품은 것. 무대는 13일 경기 파주 서원밸리GC(파 72)에서 열린 시즌 최종전 LG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총상금 14억원)이었다. ‘무명 골퍼’였던 김영수는 올 시즌 제네시스 대상과 상금왕까지 거머쥐며 한국남자프로골프(KPGA)의 간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영수는 국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일본프로골프투어와 아시아프로골프투어에 뛰어들었지만 투어 카드조차 지키지 못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실력은 살아나지 않았다. 2017년에는 2부 투어로 밀렸다.
그는 연습에만 매달렸다. 다른 돌파구는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도한 연습은 오히려 독이 됐다. 허리 디스크가 심해지자 의사에게 “뭐든 할 테니 제발 안 아프게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김영수는 “골프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한 시간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골프를 놓지 못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양말도 신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몸을 재정비하면 언젠가 다시 골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아픈 몸과 긴 슬럼프를 그렇게 버텼다.
2018년 2부 투어 상금왕을 거쳐 이듬해 코리안투어에 복귀했지만 이름을 알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한 달 전 열린 제네시스 챔피언십이었다. 코리안투어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이 대회에서 김영수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데뷔 11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김영수는 한 달 만에 갑자기 ‘간판 선수’로 변신하게 된 비결은 없다고 했다. 꾸준한 연습과 축적된 경험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아마추어 때 잘한 것처럼 프로무대에서도 빨리 성적을 내고 싶었습니다. 조급했던 거죠. 돌이켜보면 아마추어 때 잘하긴 했지만, 경험은 일천했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무너질 수도 있었던 거죠. 아무튼 성적이 나빠도 골프를 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고 경험을 쌓은 게 경기력으로 나오나 봅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를 악물고 쌓은 체력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됐다. 여기에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의 기억은 ‘잊었던 자신감’을 다시 안겨줬다. 이어진 골프존·도레이오픈에서 공동 3위에 올랐고 이번 대회 내내 리더보드 상단을 지킨 뒤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한승수의 티샷이 크게 휘면서 언덕 경사면에 멈춘 데 이어 두 번째 샷은 벙커에 빠졌다. 한승수는 벙커샷으로 버디를 노렸지만 볼이 깃대를 맞고 나오며 보기를 범했다. 김영수는 침착하게 두 번째 샷을 홀 2m 옆에 붙여 버디를 잡아냈다.
이날 우승으로 김영수는 제네시스 포인트 1000점을 따냈다. 대회 직전 그의 제네시스 포인트는 4915점, 당시 1위 서요섭과 불과 16점 차였다. 제네시스 대상을 차지하면서 보너스 상금 1억원과 제네시스 차량, 코리안투어 시드 5년, PGA투어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출전권, DP월드투어 시드 1년을 거머쥐게 됐다.
상금왕도 차지했다. 우승 상금 2억6000만원과 제네시스 대상 상금 1억원 등 단번에 3억6000만원을 거머쥐면서 김영수의 이번 시즌 상금 총액은 7억8916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종전 1위 김민규(약 7억6200만원)를 약 2700만원 차로 따돌렸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