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이달 들어 15일까지 8.1% 오르며 주요 9개국 통화 가운데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주요국 통화 중 가장 많이 떨어졌다가, 금세 달러당 1300원대 초반으로 올라선 복원력이 놀랍다. 하지만 원화 약세가 기조적 흐름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한국 수출 경쟁력 약화 등으로 수출 감소와 무역 적자가 구조화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만약 재정적자 위험 신호까지 깜빡인다면 원화 환율이 언제 1500원 선을 위협할지 모를 일이다.
금융 불안 키울 재정 문제
재정건전성 악화는 경제를 서서히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금융 불안정도 초래할 중대 문제다. 마침 세계 각국은 코로나로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공통 과제에 직면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재정준칙으로의 회귀’를 주문했다. 한국 정부 부채에 대해선 선진 35개국 중 다섯 번째로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우리 국회는 ‘딴나라 국회’ 같다. 내년 예산안에서 방만한 구석은 없는지 현미경을 들이대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증액 요구에 매달리고 있다. 기초연금 인상과 남는 쌀 의무매입 등을 주장하는 야당만 그런 게 아니다. 여당도 연말 소득공제 100만원 지원, 안심전환대출 요건 완화 등 예산 늘릴 궁리를 한다.
공교롭게도 국회엔 지난 9월 국민의힘이 발의한 재정준칙안(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올라 있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논의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정부 세제개편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위 소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은 게 직접적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더 풀 때’라는 민주당의 기본 인식이 변치 않는 한 소위 구성이 되더라도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워 보인다.
국회 논의 미룰 때 아니다
재정준칙 제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에도 정부 입법안이 마련됐다. 당시는 야당 등의 주장에 떠밀린 측면이 컸다면, 이번엔 정부·여당의 의지가 상당하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 내로 유지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면 해당 비율을 2%로 낮추는 식으로 수치 목표를 뚜렷이 했다. 이를 두고 “기계적이다” “신축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고령화 등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선 불가피하다. 미국의 물가상승이 코로나 극복 경기부양법안(CARES Act)과 그 집행예산 2조달러에서 촉발됐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정준칙이 있는 나라도 이랬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는 적자국채를 마구 찍으면서 ‘좋은 부채’라고 강변했다. 금리가 쌀 때는 국채 발행에 따른 빚 증가가 GDP 증가 효과에 비해 적어 국가채무비율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세계 경제가 초긴축에 들어가면서 설득력을 상실했다. 반성은커녕 야당이 된 지금은 복지 지출이 줄어들 수 있다며 재정준칙에 반대한다.
양극화 해소가 중요하더라도 복지 예산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그건 천수답 국가 경영이다. 재정준칙이 경제 안정과 지속 성장에 기여해 나라 살림이 튼실해지면 복지 예산에 득이 될 수도 있다. 재정준칙안이 또 잊혀져선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의 인식 전환과 성실한 논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