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내 탓이오" 깨어나야 할 나라

입력 2022-11-15 17:23   수정 2022-11-16 00:15

성공회와 천주교의 현직 신부들이 대통령 부부가 탑승한 비행기의 추락을 염원하는 기도문을 올린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성공회 사제는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천주교 신부는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합성 사진 밑에 “비나이다~ 비나이다~”는 기도문을 올렸다.

아무리 종교가 타락했기로서니 “이게 정말 실화냐” 싶은, 사제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는데도 이들은 당당했다. 천주교 신부는 자신의 기도문을 비판하는 댓글에 조롱하는 내용의 이모티콘을 일일이 달기까지 했다. 다른 종교라면 몰라도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기독교의 직업목회자들이 마음 가득 품은 저주를 전파하고서는 빈정대기까지 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 종교성직자의 노골적 탈선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깊은 병(病)에 걸려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혐오를 터뜨린 발단은 158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다. 있어서는 안 될 어이없는 재난이 많은 사람 눈앞에서 벌어졌으니 국민들이 분노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이 허술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고위공직자들의 처신과 행태가 얼마나 안일했는지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실망과 증오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국정 최종 책임을 진 대통령에게 사고 원인과 전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응분의 조치,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그 부인에게 “제발 죽어라”고 대놓고 저주하는 글을 현직 종교사제들이 연거푸 올린 것은 충격적이고 경악스럽다. ‘일부 정신 나간 자들의 경거망동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정치적으로 현 정부에 반대해 온 거의 모든 집단이 “너희들, 잘 걸렸다”는 식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통령 퇴진을 압박하는 집단행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두 사람이 저주의 기도문을 올린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지난 주말 민주노총이 6만 명 가까이(경찰 추정) 모아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책임져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대회를 연 것이 단적인 예다. 아무리 오지랖이 넓기로서니 노동자단체까지 ‘이태원’을 걸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인 게 정상일 수 없다.

작년 10월 ‘한국 사회 대전환’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방 예산 삭감과 한·미 군사동맹 해체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사실상의 종북 정치집단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나라를 흔들어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건가.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파쟁(派爭)에 급급해 재발 방지의 온전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 각계의 고질적 행태다. 304명이 희생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와 조사가 아홉 차례나 실시됐고, 매년 700억~800억원의 예산을 해양사고 예방에 쓰고 있는데도 해난사고가 되레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을 한 달 앞둔 2017년 4월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이 만들겠다”는 선언문을 쓰는 이벤트까지 벌였는데도 그렇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데는 수십~수백 가지의 크고 작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부상을 당하는 데도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정치적 반대진영에 모든 책임을 몰아 씌운 채 정죄하고 저주하는 저급한 광기(狂氣)에서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건 사태의 모든 당사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를 조목조목 치열하게 성찰하고 실천하는 게 제대로 된 사회의 모습이다.

천주교의 큰 어른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내 탓이오” 사회운동을 펼친 이유를 모두가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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