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토크] 2년 후 문 닫는 러시앤캐시

입력 2022-11-15 17:39   수정 2022-11-16 00:10

“어쩌라고! 내 맘이지!”

대부업체 러시앤캐시가 1년 전부터 줄기차게 밀고 있는 광고 시리즈다. 이 회사는 여장 남성(드래그 아티스트·사진), 트랜스젠더 유튜버, 비키니를 입은 플러스사이즈 모델 등을 내세워 이렇게 말한다. “러시앤캐시가 좀 그래? 돈 있으면 안 쓰겠지.” “안 창피하냐고? 남한테 손 벌리는 게 더 창피한데?” “내가 불쌍해? 남 걱정하지 말고 네 인생 살지?”….

눈길 끄는 효과는 확실했으니 잘 만든 광고 같으면서도 현란한 영상으로 Z세대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하려는 속내가 엿보여 불편하기도 하다. 사실 러시앤캐시는 2년 뒤 문을 닫을 회사다. 모회사인 OK금융그룹이 2014년 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10년 내 대부업 철수’를 금융당국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신규 대출도 이미 많이 줄였다.
'금융 필요악' 대부업의 몰락
대부업체는 1금융권에도 2금융권에도 속하지 못하는 금융시장의 ‘마이너리그’다. 하지만 불법 사채업자와는 엄연히 다른 합법적 금융의 영역에 있다. 국내에 대부업이 등장한 계기는 외환위기와 맞물려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요구에 따라 1998년 이자제한법(연 40%)이 폐지된 이후 연 수백%의 고금리 사채와 불법 추심이 기승을 부렸다. 차라리 제도권으로 흡수하자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그 결과 등록제 도입과 최고금리 제한(연 66%)을 핵심으로 하는 대부업법이 2002년 시행됐다. 5년 만인 2007년 등록 대부업체 수는 1만8197개로 폭증했다. ‘30일 무이자’ ‘누구나 300만원’ 같은 미끼로 대학생과 주부까지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인 업계의 탐욕도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선을 넘은 과열 영업은 자충수가 됐다. 정부는 2007년 지상파 방송에서 대부업 광고를 금지했고, 2015년부터는 자산 100억원 이상 대형 업체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금융위원회에 등록하게 해 통제를 강화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도 이어졌다. 연 49%, 44%, 39%, 34.9%, 27.9%, 24%로 차례차례 낮아졌고 지난해 더 내려와 연 20%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부터 나가떨어지면서 한동안 선두권 업체들은 오히려 이득을 봤다. 하지만 최고금리가 연 20%대에 접어들자 “우리도 못 버티겠다”는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부업체 수는 8650개로 전성기의 절반에 못 미친다.
저신용자 '대출 공백'이 걱정
경제학자들은 대부업을 금융시장의 ‘필요악’이라고 표현한다. 권할 것은 못 되지만 이것이라도 없으면 ‘진짜 불법 사채업자’한테 가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다. 올 상반기에도 10만3000명이 1인당 평균 653만원을 대부업체에서 새로 빌려 갔다. 돈 있으면 누가 대부를 쓰고 싶겠으며, 무책임하게 손 벌리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이들의 절박한 심리를 파고든 대부업 광고는 잔인하면서도 영악하다.

최고금리가 연 20%로 묶인 와중에 시장금리가 치솟자 대부업체들은 문턱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위험한 신용대출보다 안전한 담보대출을 더 많이 내준다. 이 업계를 멀리하던 당국의 접근법도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우수 대부업체에 은행 대출을 허용해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춰줬고 “서민 대출에 역할을 해 달라”는 당부도 했다. 업체들은 최고금리 현실화가 정공법이라고 호소하지만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어느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금리 올리는 정책을 들고나올 수 있나. 대부업계가 쌓은 ‘업보’, 정책 입안자들의 ‘과속’. 이 두 가지가 더해져 엉망이 된 저신용자 대출시장을 정상화하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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