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정기상여금 지급 시에 재직하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만 지급하는 조건(이하 '재직조건')이 붙어 있는 사안에서, 피고인 공공기관의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함으로서 재직조건에도 불구하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시켰다.
해당 심리불속행 결정을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는데, 노동계에서는 재직조건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례 법리가 변화한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하는 반면, 경영계에서는 이번 심리불속행 결정이 향후 대법원의 태도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대법원은 2013. 12. 18.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지급일 기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그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이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된다...(중략)... 그와 같은 조건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면, 그 임금은 이른바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그 특정시점이 도래하기 전에 퇴직하면 당해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여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그 지급조건이 성취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므로, 고정성도 결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하여 지급기준일에 재직하고 있는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 급여는 통상임금 산정시 포함될 수 없다고 판시한바 있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이후 재직조건이 붙어 있는 사안에 대한 여러 하급심 판결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재직자 조건은 강행규정에 위반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일부 하급심 법원 판결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임금은 근무한 날마다 매일 발생하는 것이며 임금지급일은 단순한 정산일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위약예정금지의 원칙, 전액지급의 원칙, 강제근로 금지의 원칙 등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직조건은 강행규정 위반으로 볼 수 없다. 먼저, 근로기준법 제7조는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가 힘의 우위를 이용하여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 근로자에게 근로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동 조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근로기준법 제107조).
정기상여금에 재직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근로자가 퇴직하고 싶은 시점에 퇴직을 망설이게 만들 수는 있겠으나 그와 같은 사정이 위와 같이 ‘폭행, 협박, 감금 등으로 근로자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정도라고 보이지는 아니하며 형사처벌에 이를 만큼 부당하다고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 따라서 이 사건 정기상여금에 대해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더라도 이를 강제근로의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불이행한 경우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을 지급하도록 예정되어 있다면 그 근로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바, 이와 같은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된 규정이다.
어떠한 임금항목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할 경우 근로자가 지급일 이전에 퇴직하는 것을 망설이게 될 수는 있겠으나, 기본급이 아닌 부가적인 성격을 갖는 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였다고 하여 근로자가 근로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볼 수는 없고, 설령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상여금의 지급일이 도래할 때 까지만 지속되는 한시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이 위약예정금지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
노동계의 가장 주요한 주장은 재직조건은 전액불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은 “임금은 통화로 직급 근로자에게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 규정은 ‘전액지급의 원칙’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전액지급의 원칙이란 사용자가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에게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용자가 임의로 임금채권의 일부를 임의로 상계 또는 공제할 경우 임금을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하는 근로자가 생활에 위협을 받고 인신구속을 강요받게 될 수 있는바, 이와 같은 부조리를 방지하고자 입법된 규정이다.
그러나 위 전액지급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청구권이 확정적으로 발생하고 지급일이 도래한 임금을 사용자가 임의로 상계 또는 공제 등을 통해 그 지급을 유보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으로, 재직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처음부터 청구권 자체가 발생하지 아니하는 재직조건부 급여에는 적용될 여지가 없다.
근로계약관계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고 그 주요한 내용으로서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은 노사 간의 사적자치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임금의 지급액, 지급시기를 비롯한 지급방식 역시 위와 같은 노사간의 사적자치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임금 항목의 지급조건을 설정하는 것도 근로기준법이 최소한의 제약으로서 설정한 강행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어떠한 임금 항목에 관하여 특정한 지급조건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러한 조건은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강행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점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는 한 섣불리 그 유효성을 부정해서는 아니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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