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해수부는 12월부터 한·미 녹색항로 구축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7일 이집트에서 열린 제27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한·미 양국이 합의한 데 따른 조치다. 미국은 녹색항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부산~시애틀 노선을 녹색항로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한국은 이를 수용했다.
녹색항로는 ‘2050년까지 해운업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국제 캠페인이다. 세계 최대 화주국인 미국과 선박금융 강국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COP26에서 2026년까지 6개 녹색항로를 도입하겠다는 ‘클라이드뱅크 선언’을 내놨다.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올해 COP27에서 10년 내 녹색항로 구축을 목표로 한 ‘그린 시핑 챌린지(Green Shipping Challenge)’ 캠페인을 내놨다. 2030년까지 무탄소 선박 비중을 전 세계 원양 선대의 5%로 높이고, 화물의 10%를 무탄소 선박으로 실어나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A~상하이 노선은 미국 측 제안을, 싱가포르~로테르담 노선은 유럽 측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한국은 그린 시핑 챌린지를 택했다. 조선·해운업 등 제조업 기반이 강한 한국 입장에선 미국 측 제안이 더 유리하다고 봤다. 해운업계에선 ‘녹색항로 전쟁’을 차세대 에너지·친환경 표준 선점 경쟁으로 보고 있다. 녹색항로를 조성하기 위해선 항로에 투입되는 선박을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저탄소·무탄소 연료로 전환하고 벙커링(해상 연료 공급) 인프라도 새로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제 기술·표준이 정해지고, 이를 선점하는 국가가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녹색항로에서 뒤처질 경우 해상 운송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는 만큼 녹색항로가 일종의 무역장벽이 될 수도 있다.
정부도 녹색항로를 비롯한 국제 환경 규제가 향후 조선·해운산업 내 새로운 진입장벽이 될 것으로 보고 차세대 기술 선점과 규제 완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친환경 선박·자율운항 기술 등의 시험운항 절차를 면제하거나 완화하기로 했다. 국제해사기구(IMO)와 함께 미래 연료 사업화 방안을 마련하고 공공·민간 선박 528척을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녹색항로로 상징되는 새로운 국제 기술 표준 구축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우리 목소리를 반영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며 “기술을 선점하지 않고선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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