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98ｍ의 충북 증평 두타산 북쪽 사면(斜面)을 거슬러 벼루재를 넘으면 거짓말처럼 별세상이 펼쳐진다. 여의도 면적만한 330만㎡의 땅에 ‘세상의 거의 모든 놀거리’가 모여 있다.18홀 규모의 대중제 골프장, 2.9㎞ 길이의 루지, 제트보트와 요트가 떠 있는 마리나클럽, 4계절 썰매장, 양떼 목장, 5개 동의 콘도미니엄 등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세계적인 모터 스포츠 중 하나인 국제카트대회를 개최할 ‘모토 아레나’도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충북 사람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역사(役事)를 ‘벨포레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관광 볼모지로 불렸던 증평을 충북 관광의 메카로 바꿔놓고 있어서다.
3대를 아우르는 전천후 플레이그라운드
벨포레를 운영하는 법인인 블랙스톤에듀팜리조트의 원성역 대표(사진)는 24일 인터뷰에서 “대기업들도 포기했던 사업을 중소 기업이 완수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벨포레가 들어선 부지는 2009년 증평에튜팜특구로 지정받았지만, 오랫동안 개발자를 찾지 못해 공지로 있었다.제주와 이천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블랙스톤리조트가 구원투수로 등장한 건 2016년이다. 총 2679억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착공한 지 1년 6개월만인 2019년 6월에 부분 개장했다. 원 대표는 “현재 준공률은 75% 수준”이라며 “2024년 말 100% 준공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벨포레가 그리는 미래에 대해 원 대표는 “스마트 관광의 구현”이라고 설명했다. “벨포레 전체 직원이 약 150명입니다. 한 명당 약 6000평을 관리해야하는 셈이에요. 비용 문제도 있지만, 지방 도시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 자체가 힘듭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스마트 관광이에요”
벨포레는 KT와 협력해 자율 배달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객실에서 주문하면 리조트 내 식당과 카페에서 음식을 로봇이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방식이다. 원 대표는 “이미 디지털 맵(지도)를 거의 완성했다”며 “내년 초쯤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증평 산업단지에 있는 철도 차량, 전기 버스 제조 전문기업인 우진산전과는 리조트를 운행할 자율주행 카트를 개발 중이다.
여의도만한 리조트에 자율카트, 로봇배달 등 스마트 관광 '실험'
원 대표의 꿈은 좀 더 멀리로 뻗어 있다. 벨포레를 스마트 시티를 위한 작은 실험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리조트에서 구현한 각종 IT 인프라와 서비스들을 모듈화하면 스마트 관광을 넘어 스마트 시티라는 거대한 시장으로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벨포레가 기존 리조트 사업자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원 대표의 특이한 이력 덕분이다. 그는 블랙스톤에듀팜리조트의 대표이자, 반도체 부품 강소기업인 대원산업의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대원산업은 반도체 포장자재인 IC 쉬핑 트레이를 개발·제조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1016억원 매출에 10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인텔 수요의 90% 가량을 대원산업이 공급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주요 고객사다.
“대원산업에서 26년을 근무했습니다. 벨포레에 투입된 건 3년 전이고요. 부친(원용권 블랙스톤 회장)이 황해도 해주 출신의 실향민이어서 그런지 유달리 땅에 대한 애착이 많으셨어요. 제주와 이천에서 골프장을 개발하고, 마지막 숙원으로 증평에 자리를 잡은 겁니다. 가족 3대가 모두 즐길 수 있는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것이 부친의 꿈이고, 저는 그 위에 스마트와 글로벌이라는 색깔을 입히는 중입니다”
요즘 원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모토 아레나다. 내년에 국제카트대회 시범 경기도 개최할 예정이다. “청주공항에서 증평까지 차로 20분 거리에요. 공항과 이 만큼 가까운 대형 리조트는 아마 국내에 없을 겁니다. 갈수록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눈을 밖으로 돌리지 않으면 리조트 산업은 존속하기 힘듭니다. 모토 아레나를 외국인 관광객을 충북으로 끌어들일 ‘관광 자석’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모토 아레나에선 카트 경주 뿐만 아니라 사이클, 미니 마라톤 등의 다양한 스포츠 대회를 열 수 있다는 게 원 대표의 구상이다. 전남 영암에 있는 FI 경주장이 반면 교사 사례다. “카트는 만 4세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탈 수 있는 모빌리티 수단입니다. 누구나 와서 체험할 수 있어요. 운전 교육 뿐만 아니라 자동차 기업들은 신차 출시 행사를 열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는 셈이죠. 활용 수단은 무궁무진합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