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들어 중소기업계의 오랜 숙원인 납품단가 제도와 기업 승계 제도를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개선하기로 하고 일부 노동 규제들도 개선하기로 하면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 규제 개혁을 위해 장관과 경제단체장이 '원팀'으로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하지만 아직 국회 법 통과가 남아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관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및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가업상속공제 등 기업 승계 관련 세법개정안이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납품단가연동제의 경우 제도 도입 요구가 나온 2008년 이후 정부가 본격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당도 도입에 반대하지 않고 있어 중소기업계는 조속한 국회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승계 세제 역시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한도와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해 2008년 제도가 생긴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납품단가에 반영해주지 않는 관행으로 중소기업계의 어려움이 커지자 김 회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때 정치권을 집요하게 설득해, 여야 모두 공약에 반영하도록 관철시켰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원자재 가격은 평균 47.6%상승한 반면 납품단가는 10.2%증가에 그쳐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급감했다.
이영 장관 역시 초기엔 납품단가 연동제와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공정위원회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벤처업계에 20년간 몸담으며 직접 겪어온 문제"라며 뚝심으로 밀어부쳤고 결국 여당도 이 제도를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게 됐다.
정부의 기업승계 제도 개선과 노동규제 개선 역시 김 회장과 이 장관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여야 대표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만나 기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책임의 대물림'이자 '제2의 창업'이라며 인식 전환에 힘썼다. 이 제도 역시 여야 대선 후보 공약에 담겼다. 하지만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지나치게 넓힌 것과 관련해 야당의 반발이 커 국회 통과는 지연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획기적으로 확대한 것도 김 회장과 이 장관의 '콤비'가 성과를 낸 사례다. 지난 8월 130여명의 중소기업인이 모인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의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한 총리가 점심 약속때문에 중간에 떠나려하자 김 회장이 "가셔도 좋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와달라"고 요청해 결국 한 총리가 약속을 취소하고 현장 건의를 계속 듣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주요 경제단체장 중에 기업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꼽힌다. 1988년 시계 제조업(로만손) 창업을 시작으로 패션주얼리(제이에스티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35년간 경영을 맡아왔고 중기중앙회장만 11년간 역임하며 일선 현장을 가장 많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월급 한푼 안받는 '비상근'중기중앙회장이지만 보통 주1~2회 출근하는 경총, 대한상의, 전경련 등 다른 경제단체장과 달리 주4회 중기중앙회로 출근한다. 일각에서 "직업이 중기중앙회장"이라는 말이 나돌정도로 중기 규제 개선에 헌신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말 141조원의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만기를 재연장해 유동성에 숨통을 트이게 한 것도 이영 장관의 큰 성과다. 중기부 관계자는 “당초 기재부와 금융위는 연장할 수 없다며 완고했지만 이영 장관이 ‘그대로 두면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압박해 결국 연장됐다”고 전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정책 효과로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3고(高)'악재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 중소기업의 연간 실적은 작년보다는 나을 것"이라면서도 "본격적인 위기는 내년에 닥칠 것이기 때문에 중소기업 관련 규제 개선이 속도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한 중소제조업체 대표는 "여야가 이제는 그만 싸우고 중소기업 관련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할 때”라고 호소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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