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큰 눈의 아이를 그린 그림. 한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화가는 이렇게 답한다. “눈을 보면 모든 걸 알 수 있어요. 눈은 영혼의 창이니까.”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2015)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미국의 여성 화가 마거릿 킨(1927~)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대화는 마거릿(에이미 아담스 분)과 그의 두 번째 남편 월터 킨(크리스토퍼 왈츠 분)이 주고받은 것이다.
마거릿은 큰 눈을 가진 아이, 일명 ‘빅 아이즈’ 작품으로 열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마거릿이 사람의 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귀 수술을 하면서부터였다. 소리가 잘 안 들리자 상대의 감정을 읽기 위해 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후 화가로 활동했지만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다. 당시 거의 모든 여성 화가는 제대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첫 번째 결혼 실패로 이혼녀가 된 후엔 괜찮은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28살이 되던 해, 마거릿은 월터를 만나 재혼했다. 월터는 아내의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 판매했다. 마거릿은 감금된 채 하루 16시간 넘게 그려야 했다. 결혼 후 남편의 성 ‘킨(KEANE)’으로 작품에 사인을 했던 터라, 사람들은 당연히 월터가 그렸다고 생각했다. 마거릿은 그렇게 오랜 기간 ‘유령 화가’로 활동하다 이혼 후 풀렸다.
마거릿이 화가로서 이름을 되찾은 것은 법정에서였다. 1986년 판사는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두 사람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한 시간 안에 빅 아이즈를 그려보시오.” 마거릿은 웃으며 단숨에 그렸지만, 월터는 온갖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빅 아이즈의 창조주는 세상에 알려졌다.
승소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마거릿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진실의 가치를 배웠다. 명성, 사랑, 돈, 그 무엇도 양심을 버릴 정도로 가치 있지는 않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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