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효율적이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정책이 왜 나왔고, 왜 시행돼야 하는지 ‘목적’을 살피는 게 불가능했다. 정책의 대상이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개별 사정에도 눈을 감았다.
그저 주어진 명령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매몰됐다. ‘관료주의 행정’ 그 자체가 지향점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얼마 전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을 교육부 산하로 옮기려던 기획재정부의 시도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이 역시 ‘주객이 전도된’ 관료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례라고 생각한다.
기재부는 40년간 유지된 제도와 관행, 관련법을 무시하고 당사자인 4대 과기원과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건너뛰면서까지 2~3주 안에 예산 이관을 추진했다. 그처럼 서둘렀던 배경에는 ‘긴축재정 기조’라는 숙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던 영향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과도한 국가 재정을 조정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긴축재정의 의도는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 실행은 비대해진 공무원 조직을 손보거나, 멀쩡한 보도블록을 들어 엎고 다시 까는 식의 전시행정을 고치는 정공법을 택했어야 했다. 서류상 ‘감축’한 듯 보이는 길을 트기 위해 과기정통부 일반회계를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로 바꾸려 했다면 한참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재부가 내놓은 입장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큰돈’을 제공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기계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진짜 중요한 것은 기재부의 ‘숫자놀음’ 탓에 첨단 과학연구의 싹이 짓밟히고, 엘리트 과학교육이 뒷걸음질치는 부작용이 빚어질 뻔했다는 점이다. 공무원의 탁상행정이 실업(實業)의 발목을 잡은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4대 과기원 예산’과 비슷한 문제가 빚어지고 있을 것이다. 300년 묵은 ‘생각 없는’ 기계적 관료 행정은 이제 멈출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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