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곡관리법 개정에 민간의 중지 모아야

입력 2022-11-16 17:58   수정 2022-11-17 00:10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양곡관리법 개정 문제에 올바로 접근하려면 2005년 양정제도 개편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도 개편의 핵심은 이전의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감축 대상 보조에 속하는 추곡수매제의 축소가 불가피해진 여건 변화와 민간 유통 기능 활성화를 통한 쌀산업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이다. 구체적으로는 추곡수매제의 정책 목적 중 식량안보 기능은 공공비축제로, 농가 소득 안정 기능은 쌀직불제로, 수급 및 가격 조절 기능은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민간 유통 기능 활성화로 실현해간다는 정책 틀이었다.

그 후 쌀변동직불제가 수급에 관계없이 농가 수취 가격을 보장함으로써 쌀시장 왜곡과 공급과잉을 심화하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2020년 쌀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논·밭, 품목에 관계없이 동일한 기본직불금을 지급함으로써 농가 자율로 품목을 선택하는 공익직불제로 전환했다.

이 같은 제도 개편에도 우리나라의 쌀은 재배면적 감소를 훨씬 웃도는 소비 감소 때문에 2000년을 기점으로 공급과잉 기조로 전환했고 과잉 규모가 2010년대 들어 연평균 24만t 수준에 이르러 2005년 이후 총 10회에 걸쳐 시장 격리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2017년 이후 높은 벼 가격이 유지되고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으며 벼 재배 농가가 노동력 부족, 소득 저하, 배수의 어려움 등 이유로 밭작물 재배를 기피함으로써 벼 재배면적이 거의 감소하지 않고 있다.

전문연구기관은 정부의 추가 정책 개입이 없는 경우 2030년까지 쌀 초과 생산량이 연평균 20만1000t에 달하고, 시장격리 의무가 도입되면 초과 생산량이 46만8000t으로 증가해 재정소요액이 연평균 1조44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와 반대로 다른 주요 식량작물의 자급률은 콩 30%, 밀 1% 내외로 수급불균형이 극심한 상황으로, 체계적인 쌀의 타 작물 전환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처럼 극도로 왜곡된 수급 구조 아래 쌀이 일정 수준 초과 생산되거나 산지 쌀값이 하락할 때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도입되면 쌀 공급과잉 심화와 쌀 재정 부담 증가로 인한 농업 재정의 압박, 정부 개입 증가에 따른 민간유통 기능 위축, 다른 농산물과의 형평성 문제 등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또 개정안에 포함된 타 작물 재배 지원 등 생산 조정 효과는 시장격리 의무화에 의한 쌀과 타 작물 간 수익성 격차가 지속되는 한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벼 재배 농가의 손실을 막고자 추진하는 시장격리 의무화 정책은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폭넓은 민간의 중지를 모아 신중하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쌀정책민간협의회’ 같은 순수 민간기구를 한시 운영하고 그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하며 필요한 지원을 정부가 제공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6개월 정도 기간에 농업전문가, 생산자대표, 쌀가공유통관계자, 전문가, 언론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과 실무 지원 인력이 집중 작업해 1994년 농어촌발전위원회 보고서와 같은 활동 성과를 토대로 심도 있는 논의와 정책 방향 정립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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