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제주에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면서 이 지역 농작물 피해가 심화하고 있다. 올여름 중부와 영남 지역은 물난리를 겪었지만, 호남에서는 마른장마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10월까지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 “내년 봄에 댐이 고갈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자 양파, 대파 등의 파종기를 맞이한 농가의 한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년 봄 식탁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16일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북과 전남의 저수율은 각각 51.9%, 45.4%에 머물러 전국 9개 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평년 저수량보다 30% 부족하다.
여름철 광주·전남 지역에 마른장마가 계속됐고 태풍이 지나갈 때도 비가 충분히 내리지 못한 영향이다. 광주광역시 상수원인 동복댐의 올해 1~10월 누적 강수량은 669㎜로 평년(1520㎜)의 44%에 그친다.
이에 따라 내년 3월이면 동복댐, 주암댐이 고갈돼 ‘제한 급수’가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내년 1월까지 평년 수준의 강수량을 유지하더라도 가뭄 4단계인 ‘심한 가뭄’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국내 겨울 대파 주산지인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는 대파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 12월 출하하는 겨울 대파는 11월이 집중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다.
물을 충분히 공급해 상품성을 높여야 하지만, 농업용수를 구할 수 없다. 자은도에서 13만2200㎡ 규모의 대파 농사를 짓는 조학현 씨(66)는 “밭마다 대파의 생육 상태가 고르지 않고 고사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양파 주산지인 전남 무안군도 비슷하다. 월동작물인 양파는 지금 파종해 내년 6월에 수확한다. 무안군 운남면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김천중 씨(59)는 “양파는 물이 없으면 뿌리가 토양에서 자리 잡지 못한다”며 “논에만 물을 대는 저수지 농업용수를 밭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행정 변화가 절실하다”고 했다.
남부지방 가뭄 여파로 대파는 벌써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이날 팜에어·한경 농산물가격지수(KAPI)를 산출하는 예측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전날 국내산 대파 시세는 전주 대비 19.6% 올랐다. 다만 상당수 작물의 올해 수확이 마무리돼 농산물 시장 전체가 불안한 양상을 보이는 건 아니다.
문제는 지금 파종한 작물의 수확이 본격화할 내년 상반기다. 유통업계 바이어들은 “지금은 농작물 수급에 큰 문제가 없지만, 물 부족 여파가 계속되면 물량 감소로 가격이 오를 공산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테란 예측정보에 따르면 양파는 현재 ㎏당 1228원에서 내년 3월 1392원으로 올라 정점을 찍고, 대파는 1726원에서 2월에 정점(2585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 슈퍼마켓 바이어는 “출하를 앞둔 배춧잎이 노래져 품질이 떨어지는 등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양파 마늘 고구마 등 주요 원물은 이미 사전 비축에 들어가거나, 비축할 물량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한경제/광주=임동률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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