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설계는 ‘환자의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암환자라면 더더구나 복잡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을 거예요.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건물이지만 내부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
국내 최초의 중입자치료 시설인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 로비층에 들어서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치료실이 있는 지하 4층까지 내려가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끊김 없이 햇살을 느낄 수 있다. 치료실에 들어가기 전 지하 4층에서 고개를 들면 뻥 뚫린 천장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꼭대기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지하 4층 바닥까지 닿는다. 벽에는 햇빛이 내리쬐는 모습을 형상화한 가느다란 조명이 비가 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다. 기존의 어두컴컴한 지하 방사선 치료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가 다음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설계를 맡아 특수 장비, 특이 지형 구조, 다목적 이용자의 동선 구분 등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 간삼건축의 헬스케어디자인팀(이태상 상무, 김홍열 수석, 박하나 팀장)을 만났다.
가속기와 치료실 등 대규모 장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건축가들의 역할은 중입자 시설을 잘 보호하는 ‘셸터’로서의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차폐(전기·자기·방사선 등을 차단해 외부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는 일) 시설이 핵심이다. 중입자 치료시설이 발달한 일본의 닛켄세케이 등과 협업했지만, 방사능 규제가 더 엄격한 한국에서 차폐 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직진성이 강한 중입자를 막아내기 위해 2~3.5m에 달하는 시멘트벽을 만들어야 한다. 시멘트를 굳히기 위해서는 높이별로 배합도 다르게 해야 했다. 전기, 소방 배선으로 인해 방사능이 유출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BIM(빌딩정보모델링) 작업을 통해 검토를 거듭했다. 김 수석은 “국내에 참고할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과 건물 기능에 대해 협의하고 이를 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며 “현장에 갔을 때 크기에 압도돼 바닥까지 내려가지도 못할 정도로 단순 건축보다는 엔지니어링에 가까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병원인 동시에 학교의 일부이기도 한 건물의 속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지하 4층 치료 시설을 이용하는 환자, 지상 2층 연구실을 이용하는 의대 교수, 지상 3층 음악당을 이용하는 음대 학생. 한 건물 내에서도 사용하는 공간이 완전히 구분돼 있는 셈이다. 불편함 없이 각자의 목적대로 건물을 사용하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 상무는 “캠퍼스는 하나의 작은 도시”라며 “이 시설은 연세대라는 학교의 축과 세브란스라는 병원의 축이 만나는 접점에 있어 이용자의 소속과 목적이 다양한 건물로, 하나의 건물이라는 통일성과 이용자의 동선을 구분하는 다양성이 동시에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활용한 것이 건물 부지의 특이한 지형이다. 부지를 둘러싸고 있는 땅들은 높이 차가 매우 컸다. 남쪽은 지하 1층, 북쪽은 지상 1층, 동쪽은 지상 3층 높이였다. 이에 출입문을 세 곳에 하나씩 만들었다. 남쪽에서 오는 환자들은 로비를 통해 지하 치료실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음대와 인접해 있는 북쪽 문을 통해서는 지상 3층의 150석 규모 음악당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교수와 행정 직원들은 동쪽 문을 통해 연구실과 스마트오피스에 도달하게 된다. 따로 이용자들의 동선을 정리하지 않아도 지형에 따라 질서가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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