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법정 최고금리

입력 2022-11-17 17:32   수정 2022-11-18 00:19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거액의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에게 약속한 대로 심장 부근 살 1파운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원금의 10배를 받고 그만두라는 지인의 권유도 무시한다. 평소 자신을 ‘더러운 유태인’이라고 멸시한 안토니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다. 결국 ‘살은 떼어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로 패소하고, 전 재산까지 몰수당하는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샤일록이 혀를 차고 갈 나라가 한국이다. 금융감독원의 ‘2021년 불법 사금융피해 신고센터 실적’ 자료를 보면 연간 수천%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 덫을 놓고 금융 취약계층의 피를 빠는 악덕 고리업자가 적지 않다. 이런 식이다. 30만원을 소액대출 해주는데 매일 복리(複利) 이자를 받고, 여기에 갚지 못한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다시 빌려주는 꺾기(재대출)까지 한다. 한 번 밀린 빚은 1년도 안 돼 수천만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빚을 못 갚고 유흥업소로 팔려가거나, 미리 쓴 신체포기각서대로 일부 장기를 떼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피해 사례가 지난해까지 4년간 56% 늘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제난도 있지만, 금리 규제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법정최고금리는 2002년 연 66%에서 지난해 연 20%로 떨어졌다. 그 추세에 맞춰 대출 난민들이 대부업체 등 3금융권에서 쫓겨나 불법 사금융으로 몰렸다. 대부업체들이 손님을 안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 10%를 넘는 조달 금리와 중개 플랫폼 수수료(2~3%), 대손 비용(8~10%) 등을 감안했을 때 연 20% 대출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4년 만에 대부업체 수와 취급액이 각각 32%, 13% 줄어든 이유다. 업계와 학계는 △법정최고금리 인상(연 20%→최소 연 26.7%) △대부업체 자금 조달 지원 △단기소액대출 금리 규제 예외 적용 등이 시급하다고 건의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만 거꾸로다. 서민들 이자 부담을 줄여준다며 법정 금리상한을 연 13~15%로 내리는 법안을 7개나 내놓았다.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명분만 아름답게 내세운 법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이미 임대차 3법, 종부세법 등으로 지겹게 확인한 터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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