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장항공단에 있는 우일수산은 인근에선 ‘농심 외가’로 통한다. 최대 주주(작년 말 기준 41.9%)인 김정조 회장은 신동원 농심 회장의 외삼촌이다. 김 회장 외에 우일수산의 주주들은 모두 김씨 성을 가졌다. 김정록, 김정림, 김정진, 김창경, 김형철, 김인창, 김윤호, 김원창 등이다. 이들의 지분을 합치면 딱 100%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우일수산은 1992년 12월에 농·수산물 가공업을 주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주력 사업은 ‘조미식품·어육제품 및 식육제품 제조업’이다. 그 외 자세한 사항에 대해선 감사보고서를 통해선 알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확인한 결과 우일수산은 농심 신라면 스프 등에 들어가는 핵심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다. 농심이 밝힌 2021년 말 기준 우일수산과의 거래 금액은 220억원 규모다. 우일수산의 지난해 매출액은 1636억원이다. 농심 새우깡에 들어가는 새우도 우일수산이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인 신격호 롯데 창업주도 그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형은 자신이 꿈꾸던 ‘종합식품회사 롯데’라는 야망을 실현하는 데 동생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청년 신춘호’는 형과의 의절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만의 ‘라면 왕국’을 일구려 했다. 그의 성과 발음이 같은 매울 신(辛)을 신라면이란 브랜드에 집어넣은 건 신 회장이 신라면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과거 재벌들이 그랬듯이 신춘호 회장도 가족 경영을 중시했다. 아들에 대한 경영 수업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친인척에도 시쳇말로 ‘먹고살 만한 사업’을 떼어줬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농심의 가족 경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신라면의 핵심 비법을 ‘내재화’하면서 외가를 적극 활용했다.
신 회장은 1956년 농심을 창업해 30년 만에 신라면을 내놓은 뒤 분말·건더기 스프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의 공급을 우일수산, 세우, 해성푸드원, 신양물류 등 인척 기업에 맡겼다. 우일수산은 동결건조 기술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회사로 평가받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신라면 맛의 비법은 매콤하면서도 기름지지 않은 국물 맛”이라며 “소고기 육수와 매콤양념, 표고버섯이 핵심인데 특히 표고버섯 동결건조 기술은 농심만의 주특기”라고 설명했다.
우일수산의 최대 주주인 김정조 회장과 김창경 대표는 부자지간으로 추정된다. 농심이 공개한 세우와의 지난해 거래액은 632억원이다. 세우의 지난해 매출액이 1023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농심이 최대 거래처인 셈이다.
신양물류 역시 농심의 ‘외가 기업’이다. 1983년 화물운송주선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라면 등 농심의 제품을 운반하는 일을 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창경 외 특수관계인이 당사 지분의 100%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해성푸드원은 농·축·수산물 가공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기업이며, 신동원 회장의 외사촌으로 추정되는 김원창, 김인창 형제가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가 50%고, 해성물산이라는 관계사가 나머지 10%를 갖고 있다. 해성푸드원은 농업법인인 해성을 관계사로 두면서 농심 및 계열사에 감자 등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농심 ‘외가 4인방’의 지난해 매출액은 4030억원에 달했다.
농심은 이에 대해 “외부에 유출돼서는 안되는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농심 관계자는 “물류만 해도 라면과 같은 작은 크기의 상품은 일반 물류 회사들이 취급을 안 해준다”고 해명했다.
팔도비빔면 등을 만드는 팔도 역시 마찬가지다. 팔도 관계자는 “대부분의 원료를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조달하고 비빔면에 들어가는 핵심 양념 등 몇 가지 재료만 기밀 유지를 위해 특정 업체와 오랫동안 거래하고 있다”며 “비빔면 스프의 핵심 재료 공급사도 팔도 및 모기업인 hy 최대 주주의 친인척과 관련된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농심의 외가 기업 4인방은 ‘그들끼리의 거래’를 통해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일수산은 세우, 신양, 해성푸드원 등 특수관계자에 275억원어치를 팔고(매출), 306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세우는 신양, 우일수산, 해성푸드원과의 지난해 거래를 매출 12억원, 매입 87억원으로 감사보고서에 기록했다. 신양은 세우, 우일수산, 해성푸드원 등 3개 사로부터 지난해 124억원의 매출을 거뒀고, 매입액은 169억원에 달했다.
농심의 이 같은 ‘외가 활용법’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내부거래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이 첫 번째다. 농심과는 외견상 무관해 보이는 인척 기업에 핵심 원료 공급을 맡김으로써 농심의 재원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견해다. 친족독립경영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는 점도 논쟁거리다. 농심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 예외 규정의 사각지대를 적극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두 가지 쟁점에 대해선 다음 화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농심은 이에 대해 “우일수산, 세우 등은 농심의 제품 생산에 필요한 대규모 동결건조, 진공튀김, 추출, 장류 가공 설비 등을 제공하는 기업”이라며 “대규모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다른 업체를 찾기 힘들고, 고품질·저렴한 단가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 최상위 업체”라고 해명했다. 업체를 인척 기업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꿀 경우 제품 단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밖에 농심 관계자는 “세우, 우일수산 뿐 아니라 100여 개의 협력사(납품업체)와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며 “지난해 농심의 전체 원물 매입액(1조3500억원) 중 세우와 우일수산의 비중은 각각 4.68%, 1.6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농심 원물의 대다수는 튀김면의 원료인 밀가루와 팜유가 차지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