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부터 일본이 자유여행객 대상 무비자 입국을 재개한 것을 계기로 ‘한·일 관광대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8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달러 가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미국인 관광객의 아시아행(行)이 급증한 것도 양국의 관광객 유치 경쟁을 가열시킨 원인이 됐다.
문제는 달러 가치가 정점을 찍고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두 나라 관광업계와 관련 기관은 동북아시아 최대 ‘큰손’인 중국인 관광객의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마당에 환율까지 안정세에 접어들면 관광 열기가 급속히 식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따라 모처럼 잡은 호기를 놓치지 않도록 관광상품 경쟁력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방문 미국인은 2015년 77만 명에서 2017년 87만 명, 2019년 104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렇더라도 이 시기 전체 외국인 입국자 가운데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5~6%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일본에서도 미국인 관광객은 최근 한 달 새 관광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일본 현지 매체들은 엔저로 미국인들이 일본 번화가에 몰리는 현상을 비중 있게 다루는 추세다.
모처럼 유입되는 외국인 관광객을 붙들어두기 위해 두 나라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는 ‘럭셔리 상품’이다. 관광 매력도를 키워 객단가를 최대한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미국의 럭셔리 관광객 16명을 유치한 게 그런 사례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회원들이 연구원과 동행해 전 세계 주요 박물관·미술관을 관람하는 상품의 한 프로그램이다. 이 여행객들은 1인당 약 1300만원을 지불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1일엔 프라이빗 전세기를 타고 미국발(發) 관광객 42명이 들어왔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은 정년 퇴임한 고위 정부 관료, 최고경영자 등이었다. 한국은 베트남, 터키 등 총 7개 방문국 중 첫 번째였다.
가격은 약 2억2000만원에 달했다. 유진호 한국관광공사 관광상품실장은 “럭셔리 관광객의 지출은 일반 관광객보다 4배 이상 많다”고 설명했다.
일본정부관광국 역시 객단가와 부가가치가 높은 어드벤처 체험형(AT) 여행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스키 등 레저활동에 중점을 둔 여행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AT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이 대부분 부유층인 데다 체류 기간도 길고, 지출 금액이 크다는 점을 노린 조치다. 나미오카 다이스케 주한일본대사관 공사(경제부장)는 “코로나19로 막혔던 지역 공항 직항편이 회복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국민들에게 국내여행을 즐길 것을 권하면서 국내여행 할인권을 배포하는 ‘전국 여행 지원’ 정책을 이달 들어 시행했다. 동시에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민간 부문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인의 일본 내 쇼핑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카카오페이를 쓸 수 있게 한 점포가 크게 늘었다.
한국에서는 롯데관광개발이 일본의 카지노 VIP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일본~제주 단독 전세기를 최근 띄우기도 했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재유행 상황과 이에 따른 입출국 정책 및 방역 조치가 앞으로 각국 관광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일본의 관광산업 강점 중 하나인 ‘지역별 다양성’을 벤치마킹해 우리나라도 각 지역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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