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도 부실이 키운 증권사 위기

입력 2022-11-20 17:34   수정 2022-11-21 00:10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잇단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50조원+알파’ 규모의 긴급시장안정대책에 이어 이번주엔 대형 증권사와 산업은행 등이 참여하는 1조8000억원 규모 ‘중소형 증권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프로그램’, 이른바 ‘제2의 채안펀드’도 가동한다.

정부 대책의 효과는 차별화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AAA급 공사채 시장은 온기를 회복하고 있지만 일반 기업들의 기업어음(CP) 발행 금리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중소형사일수록 PF 위험 더 높아
자금시장 위기의 근원지인 증권사 부동산 PF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대형사가 보증한 PF ABCP는 금리만 높여주면 이제 시장에서 소화된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반면 중소형사 ABCP는 아직도 차환 발행이 거의 막혀 있다. 중소형사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보증 ABCP 차환 발행을 못 하고 자기 유동성으로 떠안거나 제2의 채안펀드 지원을 받아야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한 곳이라도 유동성 부족으로 ABCP 차환을 못 할 경우 증권업계 전반으로 유동성 연쇄 위기가 번질 것이란 위기감도 팽배하다.

중소형사 PF ABCP가 시장에서 특히 외면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대형 증권사의 PF 익스포저 가운데 선순위 비중이 70%였다. 반면 중소형사는 중·후순위 비중이 63~72%였다. 중소형사들이 부동산 호황 지속을 믿고 적은 자본으로 고수익을 얻기 위해 상환 순위는 떨어지지만 높은 금리를 받는 중·후순위 영업을 하며 고위험을 감수한 결과다. 한 증권사 IB(기업금융) 임원은 “2010년대 초반처럼 집값 하락으로 분양 포기자들이 늘면 향후 중·후순위 대출에선 손실이 날 수 있다”고 했다.
획일적 평가 지표가 상황 악화
전문가들은 증권사의 무분별한 고위험 영업도 문제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막지 못하고 어떤 측면에선 조장한 ‘제도적 맹점’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당국이 증권사 재무 건전성 지표인 순자본비율(NCR) 산정 때 부동산 PF 익스포저에 대해서만 유독 선·중·후순위 등의 위험성을 따지지 않고 획일적인 위험값(18%)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부동산금융과 사업위험이 본질적으로 같은 회사채와 대출엔 거래 상대방 신용등급을 고려해 위험값을 차등 적용하도록 한 것과 대별된다.

한 증권사 사장은 “위험한 거래에 더 큰 위험값을 부여했다면 중소형사들은 NCR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고위험 부동산금융 거래를 지금보다 훨씬 줄였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NCR 가중치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에선 저축은행업계의 PF 사업성 평가 기준 같은 단일 건전성 분류 기준을 증권업계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일 기준이 없다 보니 증권사들은 PF 우발채무를 요주의로 분류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증권사의 고위험 영업에 대한 조기경보 기능을 못 하게 했고 현재는 증권사 보증 ABCP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금융 제도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시장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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