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은 세상을 뜨기 1년 전에 출간한 <호암자전(湖巖自傳)>에서 “삼성상회가 단기간에 급성장한 이면에는 두터운 우정으로 보답해준 이순근 씨의 힘이 컸다”고 회고했다. 사람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암은 일찍부터 “기업은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인간을 존중하고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기업도 국가도 발전한다는 뜻에서였다. 호암은 1976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보의 글에서 “기업이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면 부실 경영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재야말로 기업과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는 얘기다.
광복 후 호암은 사회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업보국(報國)의 결의를 다졌다. 일제의 강압 아래 변변한 기업 하나 없음을 통탄했던 그는 기업이 부강한 나라의 기초라고 여겼다. 기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 더 나아가 인류에게 공헌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부터 금융업까지, 경공업부터 중화학공업까지 사업을 확대한 호암이 반도체 개발을 필생의 과제로 결심한 건 인생의 만년인 일흔세 살 때였다. 삼성반도체의 성공 여부에 삼성은 물론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본 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는 40여 년 전에 벌써 ‘초격차 경영’을 강조했다. “어떤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회사든지 원가, 생산성, 품질 등이 경쟁사나 선진국보다 우수하면 그것이 바로 21세기 경영이다. 경쟁사나 선진국 수준과 똑같다면 20세기 경영이며, 경쟁사보다 못하다면 19세기, 17세기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은 이 회장의 35주기였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위기 속에서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라는 고인의 경영철학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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