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상장사들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선 내년에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 한계상황에 몰리는 기업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제출한 3분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3분기 말 기준 9개 상장사의 자본이 일부 잠식된 것으로 집계됐다.
자본잠식이란 자본총계(자기자본)가 자본금보다 적어지면서 자본금이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통상 회사의 적자폭이 커지면서 보유한 자본금을 까먹기 시작할 때 자본잠식에 빠지게 된다.
거래소 관리종목 지정 등 기준에서 자본잠식 항목은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으로 자본금의 100분의 50 이상이 잠식된 경우에 해당한다. 다만 종속회사가 있는 법인은 연결 재무제표상 자본금과 자본총계(비지배지분 제외)를 기준으로 요건을 적용한다.
물론 보험업계는 현재 자본감소가 내년 새로운 회계제도(IFRS17)를 도입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입장이다. 회계상 인식의 문제일 뿐 보험금 지급과 회사의 실질가치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강조한다.
한화손해보험은 3분기 말 기준으로 보면 자본금은 7737억원, 지배지분 자본총계는 513억원으로 표면적으로 93.3%가 잠식된 것으로 계산됐다. 비지배지분을 포함한 자본총계는 1662억원이다.
회사측은 연말이 아닌 3분기 기준인 데다 채권 재분류에 따른 착시 효과라고 해명했다. 한화손보 측은 "채권 재분류 영향으로 금리가 상승해 자본 잠식으로 보이는 회계상 착시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화손보는 3분기 833억원의 순이익을 올린데다 기초여건(펀더멘털)도 견조한 상황이라며 현재 사옥 매각과 후순위채 발행,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하면 자기자본은 2조3000억원으로 증가해 자본 상황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비상장사인 농협생명도 시장 금리가 이례적으로 급등하자 매도 가능 채권에서 지난 9월 말 기준 5조5000억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해 4820억원 규모의 자본잠식이 발생했다.
앞서 농협생명은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2023년 1월부터 시행되는 새국제회계기준에 대비하기 위해 만기보유채권을 매도가능채권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채권금리가 급등해 매도가능채권 평가손실이 누적되면서 총자본이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항공사 재무 상황도 악화했다. 항공산업의 경우 항공기를 임차하는 산업 구조상 일반 기업보다 부채비율이 높은 데다 항공유와 임차료 등 대부분 비용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 영향을 크게 받는다.
증권가에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유류비 부담에 더해 달러당 원화값 하락으로 항공사들의 외화환산손실액이 커지며 부채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3분기 기준으로 자본금이 961억원이지만 개별 자본총계가 318억원으로 자본이 66.9%가량 잠식된 것으로 집계됐다.
티웨이항공은 연결 기준 3분기에 32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순손실은 작년 3분기 452억원에서 올해 573억원으로 늘어났다. 고환율과 고유가 속에 일본과 중국 등 동북아 지역 운항편이 늘지 않아 적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아시아나항공도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3분기 기준 자본 잠식률은 57.3%, 부채비율은 1만298%에 각각 이른다.
완전 자본잠식은 아니지만 자회사 부채가 쌓이면서 4분기에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4분기에는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의 운항이 회복되고 부채가 감소할 수 있다"며 "3분기에 환차손이 급증했지만, 환율이 안정화되면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유가증권시장에서 KR모터스(38.49%), 티비에이치글로벌(30.89%), 금호타이어(13.41%), HJ중공업(6.96%), 평화산업(5.41%), 아센디오(3.52%) 등 상장사도 일부 자본 잠식 상태로 나타났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경기침체에 따라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 유입이 줄어들고 자금시장 경색으로 외부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 2∼3분기가 본격적으로 한계 기업들이 발생하는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거래소는 다만 기업 부담 완화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추진해온 상장사 퇴출 기준 합리화 방안을 다음 달 초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재무 관련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은 이달까지는 형식적 퇴출 대상이 되지만 다음 달부터는 실질심사를 통해 상장적격성을 인정받으면 구제 기회를 얻게 된다.
개정안에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사유로 바뀐 퇴출 기준은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2년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2년 연속 매출 50억원 미만 등 2가지다.
코스닥시장은 △2회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2회 연속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2년 연속 매출 30억원 미만 △2회 연속 자기자본 50% 초과 세전손실 발생 등 4가지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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