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주 회장 "반도체 장비 나사 하나 못 만든다는 설움 딛고 30년 기술독립 매진"

입력 2022-11-21 16:14   수정 2022-11-21 16:15

기업 경영 환경이 어렵다고 한다. 달러 강세, 금리 상승, 자금 경색,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나만의 독보적인 기술로 승부하며 세계 무대에서 거대 기업과 싸워 승승장구하는 기업들이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이 그중 하나다. ‘반도체장비용 나사 하나도 못 만드는 나라’라는 얘기를 듣는 설움을 딛고 이 회사는 독자기술로 세계 최초 기술을 20건 개발한 것을 비롯해 특허만 3000건에 달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제조장비의 강자로 우뚝 섰다. 경기도 안양의 서호전기도 마찬가지다. 해운 물류의 요지에 자리 잡은 싱가포르가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하고 있는 투아스항의 핵심 자동화 장치인 컨트롤러를 유럽, 일본 업체와 경쟁해 최근 수주했다. 단일 계약금액이 340억원에 이른다. 계약사는 중국 기업이지만 이 업체를 통해 결국 싱가포르에 설치하는 구조다. 어떻게 이들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일까.


경기 용인 주성엔지니어링(회장 황철주) 연구개발센터. 경부고속도로 신갈나들목(IC) 부근이다. 이곳 현관에 들어서면 가로 10m, 세로 7m의 거대한 태극기가 내방객을 맞는다. ‘기술 독립’을 상징하는 국기다.

2020년 초 신축된 이 연구개발센터는 대지 7800평, 연건평 7900평 규모로 신제품 개발의 산실이다. 이 센터 3층의 한쪽 공간으로 들어가면 클린룸 내에서 분주하게 연구개발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모습과 장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연구장비다. 이 클린룸에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장비 연구개발을 한 공간에서 진행해 각 분야의 장점을 융복합하고 기술 개발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주성의 미래와 지속 성장을 이끌 거점인 셈이다.

1993년 4월 설립돼 창립 30주년을 앞둔 주성엔지니어링은 ‘한국은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나사 하나도 못 만드는 국가’라는 선입견과 설움 속에서 기술 독립에 성공한 기업이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제품의 전(前)공정 핵심 장비를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국산화하고 세계화했다. 현재까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및 태양광 제조 장비 사업 영역에서 세계 최초 기술 20건을 개발했다.

이 중 원천 핵심 기술인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해 황철주 회장은 “반도체 제조 과정의 핵심 공정인 원자층증착(ALD) 장비가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선폭이 좁아지면서 박막 증착 기술도 향상돼야 한다. 고품질 박막 구현을 위해선 ALD 기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는 “차별화된 ALD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며 “차세대 반도체 장비를 시장에 최초로 선보여 반도체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착(deposition)은 원자 단위의 물질을 얇은 막 두께로 촘촘히 쌓아 반도체의 물리적, 화학적, 전기적 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이다. 증착 방법에는 ALD, 화학기상증착법(CVD), 물리기상증착법(PVD)이 있다. 주성은 ALD와 CVD 증착 장비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장비도 개발과 양산에도 성공했다. 황 회장은 “디스플레이 장비는 패널 대형화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10.5세대 장비를 출하하는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초고선명·플렉시블·웨어러블·투명 OLED 구현을 위해 세계 최초로 대면적 ALD 장비 개발에 성공하며 신기술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제조 장비도 주목받고 있다. 주성은 처음으로 ALD와 CVD를 접목한 태양전지 라인의 셀공정을 구축했다. 황 회장은 “혁신적인 공정 기술을 통해 단접합(싱글)과 다중접합(탠덤)에서 각각 세계 최고 수준의 광 변환 효율을 구현하는 태양전지 제조 장비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성의 HJT(이종재료를 합쳐서 만드는 기술) 태양전지 제조 장비는 고효율을 구현하기 위한 주력 장비다. 그는 “주력 기술인 반도체 ALD 기술과 OLED 대면적 증착기술을 기반으로 HJT 기술과 페로브스카이트 기술을 융복합해 35% 이상의 효율을 구현할 수 있는 탠덤 장비를 시장에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며 “내년 말쯤 양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탠덤은 빛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두 개의 서로 다른 에너지 흡수대(밴드갭)를 가진 태양전지를 하나로 다중접합한 기술이다.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 상부에 단파장 빛 흡수에 적합한 페로브스카이트를 결합해 발전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 제품이 양산될 경우 세계 태양광 산업 발전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성은 유럽, 중동, 미국 등 다양한 고객사와 태양광 사업 확대를 위한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성이 이 분야에서 앞서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술우선주의다. 황 회장은 “한국에서 무슨 반도체 장비냐는 말을 들을 때부터 기술 독립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왔다”며 “전체 임직원의 6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으며 누적 특허 건수는 3000건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년 매출의 15~20%를 투자해 세계 최초, 유일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혁신이다. 황 회장은 “한국이 못 살던 시절에는 모방을 통한 성장이 필요해 ‘헝그리 정신’이 요구됐지만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면서 이런 정신으론 한계가 있어 혁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셋째, 인재를 키워서 쓰는 정신이다. 그는 “연구 인력은 경력사원이 아니라 신입사원을 뽑아 내부에서 키워서 활용한다”고 말했다. 학력, 성별, 전공 등 기존의 채용 기준에서 탈피해 열린 선발을 진행한다. 회사 임직원들은 회사 내 외부 교수진이 강의하는 물리, 화학 등 기초 학문 프로그램을 통해 이공계 전문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고졸, 인문계 출신에 대한 자격 제한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이 회사에는 독특한 시간이 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지는 기술 특강이다. 기술 개발과 혁신을 위한 시간이다. 황 회장이나 해당 분야 전문가가 새로운 기술 트렌드와 시장 동향을 강연하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기술과 시장 트렌드를 공유한다. 이런 노력 끝에 개발한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반도체 증착 부품장비 제조 기술 핵심전략기술 부문의 ‘소부장 으뜸기업’(반도체 증착 부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황 회장은 “모든 것이 빨리 바뀌고 있는 시대에서 주성은 ‘혁신기술’을 토대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기술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도전정신과 창조 정신으로 미래 시장을 선도해 글로벌 메이저 장비회사로 도약하는 데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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