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고장나면 2000만원? 우리는 반값에 쏜다" [긱스]

입력 2022-11-30 17:25   수정 2022-11-30 17:32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가로막는 대표적 요인으로 불편한 충전 인프라와 함께 값비싼 배터리 교체 비용이 꼽힙니다. 배터리 가격은 대략 2000만원 안팎에 달합니다. 웬만한 차값의 절반에 달하죠. 그렇게 고가임에도 한번 쓰면 버려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 버려지는 폐배터리가 아까워 창업에 나선 이가 있습니다. 한경 긱스가 주최한 스타트업 경진대회 '긱스 쇼업(Geeks Show-Up)’에서 1위를 차지한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 포엔의 최성진 대표가 주인공입니다. 현대차 기술연구소 그룹장 출신의 최 대표를 만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기회와 도전을 들어봤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환경이 전기차로 가는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아주 빠르게는 못 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기차 배터리예요. 비싸고, 사용후 배터리의 환경 오염 문제도 있죠. 이 전기차 배터리를 저렴하고 안전하게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용후 배터리를 다시 만드는 일에 주목했어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 특화한 스타트업 데모데이 ‘긱스 쇼업(Geeks Show-Up)’의 IR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포엔의 최성진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포엔은 전기차 배터리의 잔존가치를 평가하고 수리가 필요한 배터리를 고치는 회사다. 2019년 현대차 사내벤처로 출발해 2020년 분사했다. 17년 간 현대차에 근무하며 현대차 기술연구소 그룹장을 역임, 모빌리티 전환(MX) 분야 전문성을 쌓은 최 대표가 포엔을 이끌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총 5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가정하고 10개 스타트업에 투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이번 IR심사에서 포엔은 가장 많은 투자금(100억원)을 유치했다. 최 대표는 "본선에 오른 스타트업들이 모두 훌륭해서 1등을 할 것이란 기대를 하지 못했다"며 "전기차라는 시장, 전기차 배터리라는 아이템을 높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2000만원짜리 배터리 '반값'에 공급
포엔은 한번 쓰고 폐기하는 전기차 배터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리퍼비시(재제조) 제품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팩을 분해해서 들여다본다. 잔존가치를 평가해 더 사용할 수 있는 경우 팩으로 만들어 다시 차량에 넣는다. 이같은 리퍼비시 서비스는 보통 신품의 '반값'에 이뤄진다.

차량에 다시 넣기에 배터리 가치가 많이 떨어진 경우엔 무정전 전원장치(UPS) 배터리팩 등 다른 용도로 재사용한다. 이 경우도 어려울 경우 친환경적 방식의 자원 재순환 솔루션까지 제공하고 있다. 배터리 재제조, 재사용이 가능해지면 전기차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최 대표는 "전기차 순환 생태계의 가장 앞단에 있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창업 전 현대차 기술연구소 그룹장으로 근무하면서 친환경차를 연구·개발하고, 실제 차를 만들어 폐기하는 업무까지 했던 인물이다. "어느 날 현대차 연구소 내부에 있는 폐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다 버려지는 걸 보게 됐어요. 이게 정말 '친환경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가 그냥 폐기될 경우 각종 오염물질이 누출돼 환경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 배터리를 과충전하거나 이물질이 포함된 배터리의 경우 화재의 위험도 있다.

2년 동안 사용후 배터리를 살리는 연구에 돌입했다. "한 고객 분이 전기차를 운행하시다가 돌이 튀어서 고장난 케이스가 있었어요. 그 분이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배터리가 고장났으니 교체비로 2000만원을 내라는 말을 들었더라고요. 향후에 전기차가 더 늘어나면 이런 이슈, 이런 사건들이 많아지겠구나, 리퍼비시 배터리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싸게 제공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미래 전기차 시장의 키워드가 '사용후 배터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순간이었다. 사내벤처로 포엔을 세우게 된 계기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우려도 있었다. "리퍼비시 배터리의 수요가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란 사실 자체엔 확신이 있었지만, 현재 신차 중 전기차 점유율은 5%수준 밖에 안돼요. 5년 뒤, 1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느냐, 아니면 5년 뒤, 10년 뒤에 전기차가 쏟아질 그 때 사업을 해야하느냐를 두고 고민했죠."

최 대표의 선택은 당장 창업해 전기차 시대를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좋은 기술을 개발해 갖춰놓고 있으면 전기차로 바뀔 시점에 시장은 우리를 가장 먼저 찾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것 같습니다." 포엔은 배터리 잔존가치 평가기술과 배터리 재제조 기술을 인정받아 누적 투자금 77억원을 유치했다.
"사용후 배터리 밸류체인의 플랫폼이 되겠다"
최 대표는 택시 회사 등 영업용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리퍼비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로 법인택시 5대를 산다면 리퍼비시 배터리 서비스 1대를 해주는 식이다. 최 대표는 "택시는 워낙 많이 뛰기 때문에(누적 주행거리가 길기 때문에) 법인이 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려고 할 때 배터리 문제로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그 대안이 리퍼비시 배터리 서비스"라고 말했다. "배터리 가격이 2000만원 정도 되는데, 리퍼비시 서비스로 9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에 배터리를 납품해주면 택시 회사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최 대표는 포엔을 사용 후 배터리 밸류체인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기차가 많아지면 그에 따라 배터리 수리 수요가 늘어날 겁니다. 배터리 수리, 교체를 하려고 하는 회사들도 많이 나올 거고요. 포엔은 이들에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사용후 배터리 밸류체인의 플랫폼이 되려 합니다." 포엔이 본사라면 배터리 수리 회사들이 각 지역에 있는 대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다른 전기차 배터리 회사들을 경쟁업체가 아니라 협업해야할 동료 회사로 보고있는 이유다.

현대차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타트업과도 협업할 예정이다. 이미 배터리 창고 운영을 위해 3D 모델링 스타트업인 애니웨어와 협업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있는 방법은 바로 협업이에요. 다른 회사의 강점을 흡수하고,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찾는 거죠. 오픈 이노베이션은 큰 회사보다 작은 회사에서 더 잘 됩니다."

최 대표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네임밸류를 가진 기업이 되고싶다고 했다. "전기차 배터리에 문제가 있거나 고장이 난다면 바로 포엔을 찾을 수 있게, 또 배터리를 처리해야하는데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버리고 싶다고 할 때도 가장 먼저 포엔을 떠올리게 하고싶어요.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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