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전 장관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그의 개인사와 닮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첫 근무지로 발령받은 경주세무서 얘기도 소설에 등장한다. 자전적 소설이냐고 물었더니 “경험을 바탕으로 썼지만 100% 자전적 소설은 아니다”고 했다. 여러 비슷한 경험의 편린을 모아서 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말 그대로 픽션이라는 설명이다.
평생 경제관료로 살아온 사람이 소설가로 변신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얘기다. “소설가가 됐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옵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한 독자분은 너무 아름다운 소설이라며 유튜브에 낭독하는 영상을 올리겠다고 하더군요.”
강 전 장관은 원래 소설가를 꿈꾼 문학청년이었다. 경남고 2학년 때 소설가가 되겠다며 자퇴한 적도 있다. “작문 시간에 ‘소나기’를 읽고 영어 시간에 ‘After Twenty Years’를 배웠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드리나강의 다리’와 ‘분노의 포도’에 감동해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 학업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갔었죠. 하지만 ‘너한테는 공부가 가장 쉬울 것’이라는 은사의 회유와 압박에 1년 만에 다시 복학했습니다.”
강 전 장관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만큼 문장력이 남다르다. 그는 평소 글을 쓸 때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최고의 목수는 못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도 접속사를 남발하면 좋은 문장이 될 수 없어요.”
그는 “문학청년 시절부터 6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작은 낙엽 ‘동백꽃처럼’을 썼다”며 “조용히 소설 창작에 정진해 여생을 소설가로 보낼 생각”이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은 1999년에는 ‘그리움’이라는 5연시로 시조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주도했다. 2005년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2015년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등 경제 관련 저서를 다수 냈고, 경제위기 대응실록은 영어로도 편역했다. 재경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후 10여 년간의 야인 시절 한국경제신문에 다산칼럼을 장기 연재하기도 했다. 그가 등단한 한국소설가협회는 1974년 발족했고, 소설가 김동리 등이 회장을 지냈다. 회원은 1350명이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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