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버노가 대법관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공화당 내 대표적 반(反)트럼프계인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이다. 콜린스는 캐버노로부터 여성들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한다는 확약을 받고 그를 공개 지지해 인준안 통과에 큰 힘을 실어줬다. 그랬던 캐버노는 콜린스와의 약속을 가차 없이 저버리고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에 앞장섰다. 임명 때부터 공화당에 짐이 됐던 캐버노는 낙태권 폐지로 공화당에 또다시 정치적 부담을 안긴 ‘천덕꾸러기’ 대법관이다.
캐버노 이전에 임명 과정이 가장 시끄러웠던 미국 대법관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임명된 흑인 대법관 클라렌스 토머스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과거 자신의 부하직원 아니타 힐 당시 오클라호마대 교수(현 브랜다이스대 교수)의 ‘미투(me two)’ 폭로가 미국을 흔들면서 임명이 무산될 뻔했다. 당시 그를 살려준 건 상원 법사위원장인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다. 당은 다르지만 흑인 대법관 탄생을 희망했던 바이든이 그의 편을 들어줘 대법관이 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되는 첫 대법관 오석준 후보자에 대한 임명 절차가 117일간 표류하다 비판이 일자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키로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 ‘800원 횡령 판결’ 등을 문제 삼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지난 7월 28일 지명 이후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대법관 공석이 길어지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전, 사건 추가 배당 보류 등 재판 지연 사태가 빚어졌다. 한·일 외교 정상화와 관련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 사건의 심리도 중단된 상태다. 미국은 성폭행 및 성희롱 의혹에 연루된 후보자들도 결국 인준을 통과했다. 인사청문회에서 결정적 하자가 발견되지 않은 후보자 인준을 이토록 질질 끈 것은 또 하나의 대선 불복일 뿐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