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디지털 전환 시계가 빨라졌다. 부산시는 이미 빅데이터를 통한 행정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단계를 넘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문제점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단계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에서, 컴퓨터가 내놓은 예측을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영화 시나리오를 AI가 만들어내는 기술은 이미 이용자가 활발히 활용하는 영역에 접어들었다. 김기홍 동서대 교수는 “4~5년 뒤 실현될 것으로 생각한 AI 기술이 이미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다”며 “영화 시나리오는 물론 글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AI 기술은 이미 오픈소스로 공개돼 상상력만 갖추면 콘텐츠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창작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뿌리산업 등 중소 제조업이 밀집한 부산의 특성상 이 분야에 대한 디지털 전환 인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최수호 부산연합기술지주 투자실장은 “프로세스 마이닝을 기반으로 한 독일의 셀로니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비슷한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실적 개선은 더딘 편”이라며 “유럽과 한국의 제조업 관련 기업의 디지털 전환에 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부터 시작된 부산 수영구 ‘광안리 M 드론라이트쇼’에 관한 데이터 분석 컨설팅 결과서의 내용 중 일부다. 부산시가 각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으로부터 분석을 의뢰받아 데이터 분석 전문기업에 컨설팅을 맡긴 사업 가운데 하나다. 수영구는 광안리 드론쇼와 관련한 방문객 집계 및 소비 행태 분석을 의뢰했으며, 컨설팅 업체는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의 특정 구역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생활인구와 카드 이용의 좌표 정보를 활용해 △시간 △성별 △연령별 방문 인구와 신용카드 이용금액에 관한 데이터를 집계하고 생성했다. 부산시는 올해 41건의 데이터 분석 컨설팅을 시행했다. 유동인구의 카드 매출 통계부터 무인민원발급기 최적지 선정, 장기표류사업의 갈등 키워드 분석과 같은 의뢰가 들어왔다.
2020년부터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여러 행정적 문제를 해결했던 부산시는 내년부터 데이터 기반 행정을 시 전반적으로 확대한다. 시는 시비 130여억원을 투입해 2025년까지 부산형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구축한다.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에서 AI를 통한 적극적인 활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선 부산시 빅데이터통계과장은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에 관한 분석은 어느 지역에서, 누가 얼마나 썼는지 등 현상 분석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앞으로는 머신러닝이나 인공지능 방법론까지 동원해 지역 간 소비의 유사성과 지역 특성에 따른 음식점 소비 행태까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분석을 통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빠르게 확인하고 대응하는 체계 구축에 관해서는 이미 관련 부서와 논의 중이다.
동서대 인공지능 연계 콘텐츠 창작자 인재양성사업단(이하 사업단)은 200개의 호러 장르 드라마 시나리오를 모아 AI 학습 과정을 거쳤다. 사업단을 맡은 김기홍 교수는 “AI 모델에 주인공 이름과 배경, 분위기 등을 입력하면 시나리오가 ‘뽑히는’ 방식”이라며 “키보드 버튼만 누르면 시나리오가 뽑히니 영화 제작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표현된 글을 AI가 이미지로 구현하는 기술은 이미 오픈소스로 공개돼 창작자 사이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아직 사람이 만드는 것만큼 정교하거나 창의적이진 않지만, 상상력 하나만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평가다. 김 교수는 “웹툰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영화 제작을 위한 인프라뿐 아니라 천혜의 배경을 갖춘 부산에서 관련 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지역 프로세스 마이닝 기업 아이오코드 역시 그룹 연결 매출 1조원이 넘는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인 센트랄로부터 1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 센트랄에 프로세스 마이닝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프로세스 마이닝은 설비에 센서를 달아 공장 내 특정 공정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 스마트공장과는 다른 개념이다. 경영 전반에 걸친 변화의 흐름을 추적하고, 효율성을 위한 답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설비가 언제 고장 나는지 등 예측을 통한 해답은 AI가 내놓는다.
경영 혁신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국내 제조업의 인식은 저조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상화 아이오코드 대표는 “금융산업은 프로세스 마이닝 적용 후 개선된 경영 지표가 상당히 명확하지만, 제조업은 설비 효율성 달성이 뚜렷하게 눈에 띄지 않아 프로세스 마이닝 적용이 어려운 분야”라며 “주요 클라우드 기업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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