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른 학교에서 편입했는데 이전 학교에선 총학생회장 후보가 나오지 않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며 “알게 모르게 불편한 사항이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대부분 대학교가 대면 수업을 택하며 대면 활동이 활성화됐다. 이에 학생 자치를 대변하는 총학생회의 출범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의외였다. 국민대학교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는 10월 공고문을 내고 제55대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는 공지를 발표했다. 입후보한 후보자가 없다는 게 이유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각종 대학들도 투표율 미달, 총학생회 선거본부 낙선 등을 이유로 장기간 비대위 체재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대학교들이 대면 수업을 재개하며 학교 시설을 책임지고 전반적인 학교 운영을 담당하는 학생자치의 중요성이 다시금 대두했다. 반면 총학생회 선거는 커녕 입후보자조차 없는 대학들도 속속 등장하며 학생들은 셔틀버스 운영 차질, 학교 시설 미비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총학생회를 위협하는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속 비난… “어느 순간 총학은 욕받이가 돼 있었어요”
총학생회의 실종은 일하는 시간과 업무 강도보다 대가가 크지 않고 학우들이 익명으로 하는 지나친 비난이 원인으로 꼽힌다. 학생들을 위해 출범하는 총학생회가 일종의 ‘욕받이’가 된 셈이다.
총학생회의 활동은 모든 학우의 관심이 집중되는 데다가 익명으로 게시글을 올릴 수 있는 ‘에브리타임’이 학생들의 주요 커뮤니티로 떠오르며 총학생회를 향한 필터링 없는 비난이 이어졌다.
국민대학교 한 단과대 학생회 선거에 나선 A씨는 총학생회 선거 무산에 대해 “총학생회는 업무 부담이 크고 총학생회를 향해 외부 비난이 많다 보니 외부에서 이를 보는 학생들이 다음 총학 출마를 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는 “투표를 통해 유권자의 권리를 위임 받은 학생회와 학생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결성된 비대위는 큰 차이가 있다”며 “비대위가 업무나 학교 행정을 적극 추진하기엔 동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어 A 씨는 “주로 단과대 회장 출신들이 총학생회에 도전하는데 단과대와 총학은 업무 규모에서 차원이 다르다”며 “’에브리타임’에서도 총학생회 행정에 대해 과한 비판이 이뤄져서 다들 출마를 꺼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타 학교에서도 커뮤니티에서의 비난 때문에 총학생회 활동이나 선거가 위축됐다. 인하대학교 졸업생 이동희(23)씨는 “내년 총학생회 선거를 치르기 위해 2개의 선거본부(선본)들이 나왔으나 한 선본이 에브리타임에서의 과한 비난을 이유로 사퇴했다고 게시물을 봤다”고 답했다. 이어 이 씨는 “실명을 걸고 나오는 후보자를 상대로 익명으로 선을 넘는 비난이 나오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사퇴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서강대학교 재학 중인 이동혁(27)씨는 “익명성을 무기로 한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브리타임)의 발언 수위는 입에 담지 못할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총학생회는 여러 사업이 학생 복지와 직결된 만큼 관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필터링 없는 말들이 오가며 학우들이 총학생회 출마에 부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서강대학교 역시 올해부터 비상대책위원회로 운영되고 있다.
입후보자가 나와도… 떨어지는 총학생회 관심도에 투표율은 바닥
총학생회 부재는 비단 일부 학교의 문제가 아닌 코로나 이후 국내 캠퍼스 전반에 형성된 문제다. 총학생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약해지던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공백기가 겹치며 학생자치의 관심도가 크게 떨어졌다.
서울 소재 20개 대학의 총학생회 운영 여부를 확인해 본 결과, 20개 대학 중 10개 대학이 총학생회 없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재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동희 씨는 “인하대는 몇 년 동안 총학생회가 존재하지 않아 교내 예산 집행이 어려웠다고 알고 있다”며 “올해도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장 직무대행도 중도 사퇴해 교내 축제가 열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씨는 “나도 그랬지만 학우들이 전반적으로 총학생회 투표에 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진다”며 “학생회가 없어도 비대위가 꾸려지고 결국 학교 행정은 어떻게 하든 진행되니 되려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의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도 하락은 선거 투표 수 부족으로 이어진다. 서강대학교는 개표정족수로 전체 학우의 33.3%를 넘겨야 개표가 시작되지만 가장 최근 이뤄진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은 29.7%에 불과했다.
인하대학교 역시 단독 입후보자는 40%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중 50%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해 총학생회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비상대책위원회로 운영 중인 경북대학교는 총학생회 입후보자가 존재하지 않아 총학생회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경북대는 이어진 3월 보궐 선거에서도 입후보자가 없어 총학생회 재선거를 치를 수 없었다. 총학생회 부재는 곧 학생 복지 축소로 이어진다. 총학생회가 관리 하던 기존 행사나 복지들이 줄어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국민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한 이승준(국민대학교 AI빅데이터융합경영학과?3)씨는 “비대위를 하며 예전 총학생회만큼의 행사는 하기 어려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행사만 진행했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 씨는 “올해 10월 축제 때도 외부에서 연예인 공연을 보러 오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인원이 부족해 통제가 힘들었다고 들었다”며 “행사 기획 뿐만 아니라 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응 등 학생 권익 보호를 위해 총학생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인하대학교도 총학생회가 관리하는 학생 휴게실을 이용하지 못해 학생들이 공강 시간에 갈 곳이 없어지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학생 휴게실 관리 주체인 총학생회가 존재하지 않아 휴게실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총학생회 부재 대안은? 학생, 교수들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시스템 꾸려져야”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총학생회가 부재하지만 대안은 존재했다. 단기적으론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안건별로 특별(TF)팀이 꾸려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편 근본적인 해결책으론 총학생회 시스템 자체를 변경하는 게 필요하단 지적이다.
김민정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총학생회가 없는 대학은 학생들끼리 TF팀을 꾸려 학교에 의견을 전달하는 경우가 최근 종종 있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TF팀 대표자가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TF팀이 수집한 학번, 이름이 담긴 서명 명부는 정당성이 있다”며 “’이렇게 많은 학우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서명했다’라고 명부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김은경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최근 20대는 각자에게 이익이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선 적극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학생들 개인에게 더 밀접한 영향과 이익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총학생회 구조를 바꾸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악플 문제는 익명 커뮤니티의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최근 정치권과 어린이들까지도 나타나는 문제”라며 “총대를 메는 누구 한 명에게 조건 없는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악플 방지 자정캠페인 등을 함과 동시에 수위가 넘는 악플을 처벌할 수 있게 신고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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