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조 현금왕' 삼성전자…연 7.7% 고금리 회사채 안 갚는 까닭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입력 2022-11-23 06:00   수정 2022-11-23 09:35


1997년 10월 2일 미국 뉴욕. 삼성전자는 현지에서 한국 민간기업 최초로 양키본드 1억달러를 발행했다. 양키본드는 미국 국적이 아닌 회사가 미국 시장에서 발행하는 달러표시채권. 만기는 30년이고, 금리는 연 7.7%에 달했다.

삼성전자는 25년째 이 양키본드 이자비용과 원금을 갚는 중이다. 현금만 130조원이 넘고 언제든 국고채 수준의 금리로 자금조달이 가능한 삼성전자가 연 7%대 고금리 채권을 갚지 않는 이유는 관련한 권한이 없어서다. 양키본드를 조기 상환할 권리(콜옵션)가 없는 만큼 만기 시점인 2027년까지 이 채권을 상환해야 한다. 최근 치솟는 금리와 불안한 자금시장과 맞물려 삼성전자의 고금리 회사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997년 발행한 양키본드 발행액 1억달러 가운데 2500만달러(약 340억원)를 상환하지 않고 남겨뒀다. 단순 계산으로 연간 이자비용으로만 192만5000만달러(약 26억원)씩을 내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1997년 양키본드를 1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발행했다. 이 조건에 따라 2008년부터는 매년 500만달러씩 원금을 갚아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7년 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양키본드 1억달러를 조달했다. 한보와 진로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으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상황에서도 조달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조달한 달러는 삼성전자가 외환위기를 견디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일각에서는 고금리인 양키본드를 상환하지 않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말 보유한 현금성 자산(현금, 단기금융상품 등 합계)만 136조3302억원에 달했다. 현금성 자산에서 차입금을 제거한 순현금만 123조8683억원이다. 재무전략으로 볼 때 고금리 양키본드를 갚는 것이 낫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양키본드를 조기에 상환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최근 국내에서 발행되는 30년 만기 영구채 등은 통상 발행 3~5년 후 발행사가 중도 상환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과는 판이하다. 투자자들도 안전자산인 데다 금리도 높은 삼성전자 양키본드의 중도 상환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 지난 9월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삼성전자의 신용등급을 기존 'Aa3'에서 'Aa2'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평가에서 Aaa, Aa1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한국의 국가 신용도와 같은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27년 10월 1일 양키본드를 완전히 상환할 때까지 원금과 이자비용을 투자자에게 지급할 전망이다. 앞으로 삼성전자 양키본드처럼 고금리 안전자산 상품이 다시 시장에 등장할지도 관심사다. 이 회사는 2001년 3월 3년 만기 회사채 1조원어치를 발행한 이후 자본시장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 용어풀이

양키본드·아리랑본드·사무라이본드·딤섬본드·판다본드·불독본드

양키본드는 외국기업이 미국에서 달러화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원화로 발행하는 채권은 아리랑본드, 일본에서 엔화로 발행하는 채권은 사무라이본드로 불린다. 중국에서 외국기업이 위안화로 발행하는 채권으로는 딤섬본드와 판다본드가 있다. 홍콩에서 발행하면 딤섬본드, 중국 본토에서 발행하면 판다본드다. 외국기업이 영국에서 찍는 파운드화 채권은 불독본드로 통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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