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림동의 한 카페. 무인주문기(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이곳에 한 외국인 남성이 들어왔다. 키오스크로 다가간 그는 곧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메뉴 설명은 온통 한국어. 메뉴에 첨부된 그림으로만 커피와 케익 종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영어로 된 설명은 ‘결제하기’ 버튼에만 있었다. 가까스로 커피와 케익을 주문한 그는 멤버십 적립을 위한 ‘전화번호 입력’에서 다시 막혔다. 키오스크 앞에서 10분 넘게 서 있던 그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뒷사람의 눈치를 보다 결국 빈손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한국어가 취약한 외국인들이 키오스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문부터 결제까지 모든 설명이 한국어로만 돼 있는 탓이다. 키오스크가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러시아인 일리아나 씨(25)도 생필품을 사러 인근 마트를 찾았다 낭패를 봤다. 키오스크를 이용해 직접 결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리아나 씨는 “물건을 올리고 바코드를 찍는 과정이 전부 한국어로만 돼 있어 당황했다”고 했다. 그는 “물건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며 한국 친구들이 추천해준 곳이어서 처음엔 나를 놀리려고 보낸 줄 알았다”고 했다.
국내 키오스크 대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국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민간시설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2019년 8587대에서 2021년 2만6574대로 3배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공공시설에 설치된 키오스크도 2019년 18만1364대에서 2021년 18만3459대로 증가했다. 키오스크의 확산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스템 확산, 매장 인건비 절감, 직원 보호 등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키오스크 이용자를 위한 외국어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키오스크에 막혀 한시가 급한 환자들의 병원 진료까지 늦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2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일본인 타마베 씨(40)는 최근 아픈 자녀를 데리고 인근 병원을 찾았다가 애를 먹었다. 접수를 위해 먼저 키오스크를 통해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전부 한국어로만 돼 있어서다. 타마베 씨는 “주변의 다른 한국인들이 도와줘 간신히 접수를 마치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관련 지침을 바탕으로 키오스크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전파연구원이 내놓은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에는 무인정보단말기에서 지원되는 모든 외국어 서비스가 한국어 서비스 수준과 동등하게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명시돼있다. 해당 지침에는 온-스크린 콘텐츠 첫 화면에서 사용자가 선호하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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