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캔버스 안에 크기가 제각각인 사각형이 여러 개 있다. 검은색, 회색, 분홍색의 물감으로 그려낸 사각형을 들여다보면 투박한 붓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서로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미처 마르지 못한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 알쏭달쏭한 그림을 떠받치고 있는 건 캔버스 하단에 있는 20~25㎝ 높이의 ‘빈 공간’이다.
이 그림을 그린 마거릿 리(42)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그는 최근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에서 기자와 만나 “내 ‘그라운드(기반)’이자 뿌리인 한국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여백’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마거릿은 1980년 뉴욕에서 태어난 이후 그곳을 떠난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게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은 항상 ‘미지의 세계’였다. 마거릿은 “부모님으로부터 1960~1970년대 한국의 모습이 어땠는지 종종 들긴 했지만, 한국에 직접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곳의 현대 미술이 어떤지 항상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는 전시 ‘잇 푸시스 백(IT PUSHES BACK)’에서 선보인 신작의 밑부분이 비워져 있다는 건 그래서다. 마거릿은 캔버스 밑을 젯소칠(캔버스에 물감이 잘 발색되도록 하는 흰 바탕칠)만 한 채 비워뒀다. 정체성의 근간인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을 빈 공간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해 캔버스의 윗부분은 그가 잘 알고 있는 뉴욕의 모습으로 채웠다. 아파트 안이나 지하철에서 네모난 창문을 통해 본 뉴욕 풍경의 잔상을 사각형으로 추상화했다.
캔버스를 그림으로만 채우는 작업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에겐 ‘도전’이었다. 마거릿은 원래 캔버스에 신문지, 못, 노끈 등 다양한 재료를 붙이는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다른 재료 없이 오직 붓으로만 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할 때 붓칠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 마치 붓이 나를 밀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전 작업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는 나를 붓이 시험하는 느낌이었죠.” 이번 전시 제목을 ‘그것이 밀쳐낸다’로 결정한 이유다.
그는 신작을 포함한 회화작품 15점으로 리안갤러리를 채웠다. 1층에는 기존 작품, 지하에는 신작을 볼 수 있다. 해석이 어려운 추상회화인데 일반 관람객을 위한 리플렛(소책자)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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